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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역명의 탄생과 뒷 이야기

by 형과니 2023. 5. 4.

역명의 탄생과 뒷 이야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6-08 00:37:34

 

역명의 탄생과 뒷 이야기

 

조애경 인천지하철공사 홍보차장

 

 역의 이름은 어떻게 짓는가.’

 인천시는 지난 93년 인천지하철1호선 건설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졌을 때부터 역명을 제정하는 절차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1년여에 걸쳐 역세권 주민들에게 가장 적정한 역명을 추천받고 심의의원들의 심의 확정 후 관보에 역명을 고시했다.

 

 93년부터 착공된 지하철공사는 예정보다 1년을 넘긴 6년 후 개통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역이름표를 붙이고 시작된 6년여의 공사기간동안 역세권은 점차 바뀌고 있었다. 역명과 어울리지 않는 곳이 생겼으며 지하철에 무관심했던 주민들도 점차 위용을 드러내는 지하철의 역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역명을 둘러싼 작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역세권의 변화로 역명이 바뀐 곳은 지금의 부평구청역’. 건설 당시 지금의 부평시장역가까이에 북구청이 있었기에 북구청역이었다. 하지만 급격한 인구증가에 따라 1995년에 북구가 계양구와 부평구로 분구되면서 '북구'라는 명칭은 사라졌으며 이어 부평구청 신청사를 옮겨짓는 바람에 지금의 갈산동 입구는 자연스레 부평구청역이 되었고 대신 사라진 북구청역은 부평시장역이 되었다.

 

 가장 논란이 있었던 역은 지금의 동수역이다. 처음 주민들이 압도적으로 추천한 역명은 삼능역이었다. 일제시대 때부터 미쯔비시공장과 사택이 있었다고 해서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도 삼능하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역명이었으나 당시 부평2동 동정자문위원회에서 주민의 집단서명서를 제시하며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삼능을 역명으로 할 수 없다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그래서 확정을 눈 앞에 두고 삼능역은 사라졌고 대신 1970년 부평2동에서 부평6동으로 분동해 나갈 때 동수동으로 불리었던 점을 들어 동수역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개통을 1년 앞둔 1998년쯤 부평2동 동정자문위원회로부터 동수역이 적절하지 않다는 건의가 다시 접수되었다. 그들은 이곳은 동수가 아니니 주민에게 익숙한 삼능역으로 해달라고 주장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래전 자신들의 단체에서 거부했던 역명을 다시 환원하려니 설득력도 떨어지고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호소와 건의에도 불구하고 삼능역은 탄생하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다음은 지금도 고민이 많은 부평삼거리역’. 삼능 만큼이나 주민들의 인지도가 높은 명칭이었는데 이곳이 지하철 개통을 앞두고 부평사거리로 변모하면서 작은 논란이 있었다. 당초에는 역사적인 지역이으로 이곳을 원통역으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과 역세권에 있는 인천시립묘지역으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원통역은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의견으로 채택되지 못했고 인천시립묘지역시 역명으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아 주민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부평삼거리를 역명으로 결정했다. 현재 지상은 부평사거리로 변모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애칭처럼 이곳을 부평삼거리역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음은 혜성같이 등장한 원인재역’. 당초 이곳은 남동구와 연수구의 경계선이어서 적절한 역명을 찾지 못해 인천의 남쪽이라는 뜻을 가진 남인천역으로 정했었다. 그러나 개통을 앞두고 인천 이 씨의 시조를 모신 원인재를 역명으로 하자는 의견이 접수되면서 찬반 논란이 있었다. 인천 이 씨의 사당은 개인적인 것으로서 역명으로 정당하지 않다는 의견과 인천문화재로 지정된 곳인 만큼 역명으로 해도 무방하다는 팽팽한 의견 속에서 밋밋한 남인천역보다는 상징적인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원인재역이 탄생했다.

 

 그 외에 인천을 상징하는 남동공단역이 있어야 한다는 건의도 만만치 않았으나 공단이 워낙 넓고 커서 어느 곳을 역명으로 지정하기 어렵고 이용시민들이 더 헷갈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공단 초입인 신연수역에 병기표기와 함께 안내방송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22개의 역명 중 부평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역이 네 곳이나 되다 보니 인천보다 부평이 더 유명하다며 다른 적절한 역명이 없을까하고 고민하던 분도 있었다.

 

 지하철의 개통과 함께 역명은 우리의 만남과 대화 속에서 또 흔한 광고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가장 친숙하고 상징적인 이름으로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다. 가끔 수도권에서 역이름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갈등사례를 되돌아보면 미미한 역명이지만 일상 속에 역명이 주는 유래와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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