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역이름 때문에 생긴 일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6-08 00:39:06
부평역이름 때문에 생긴 일
조애경 인천지하철공사 홍보차장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는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부평역이 등장한다. 엽기적인 그녀와 남자주인공 견우가 만나 벌이는 첫 번째 에피소드는 부평역 앞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경인전철을 타고 종점역인 인천역에서 하차한다.
과거나 지금이나 부평역 앞은 늘 넘쳐나는 사람들 때문에 불야성이었지만 영화 개봉 이후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더욱 인기를 얻었다. 그런 가운데 부평이라는 이름 때문에 생긴 억울한 추억이나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개통 초기 부평구청역에 근무하던 직원은 야간에 매표업무를 하던 중 약간의 취기가 있는 손님 두 사람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박촌역에서 승차해 부평에서 전철을 바꿔 탄 후 소사역까지 가야하는 두 사람은 부평구청역을 부평역인 것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역무실에서 그들은 “분명히 열차 안에서 부평역이라고 안내방송을 해서 우리는 내렸다.”고 주장하며 방송이 잘못됐으니 소사까지 가는 승차권을 내놓으라고 떼를 썼다.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직원과 실랑이를 하는 사이 시간이 밤 11시반을 넘어섰고 직원은 ‘소사까지 가려면 지금 가셔야만 마지막 경인선을 탈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표를 주지 않으면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끝내 마지막열차를 놓친 그들은 직원들과 함께 역무실에서 밤을 새고 이튿날 술이 깬 뒤 계면쩍은 모습으로 승차권을 구입한 후 부평구청역을 떠났다. 두 사람은 취중에 부평역인 줄 알고 잘못 내린 부평구청역에서 소사까지 가는 데 10시간이 넘게 걸린 셈이다.
부평시장역 근처에 살고 있는 조모 씨도 내게 비슷한 하소연을 했다. 집 가까이를 관통하는 인천지하철 개통을 누구보다 기다렸고 개통 이후 늘 인천지하철을 이용한다는 그는 각종 모임에 참석했다가 밤늦게 귀가할 때 종종 비슷한 부평역이름 때문에 잘못 하차해 애를 먹은 적이 많았다면서 ‘부평’을 원망했다.
지금부터 110여 년 전인 1899년 9월 18일 우리나라 최초로 인천역과 노량진역 간 33.8km의 경인선이 개통될 무렵 지금의 부평역 앞 부평구보건소 근처에 30호 정도의 부평군 동소정면 대정리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 동소정면사무소가 있어 사람들은 부평역 인근을 ‘동수재이’라 불러왔는데 가까이 산줄기 허리를 끊고 기찻길이 지나면서 지금의 부평역이 들어섰다. 그 당시 부평군청은 지금의 계산동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을 부평역이라 부르지 않고 주민들에게 더 친근했던 ‘동수재이 정거장’이라고 불렀다.
개통 당시 부평역 인근 주안역과 소사역에는 천일염(주안염전)과 일본인 농장 수밀도(水密挑)가 있어 전기가 들어왔지만 부평역만은 35년 동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석유등 신세를 졌고 1934년에야 비로소 전기가 송전됐다. 당시 전기를 송전하는 영업소는 소사에 위치해 있었고 부평 전지역까지 관할했다고 한다.
이처럼 인천지역에서 가장 미개지였던 부평역이 경인선 개통 100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이제 부평역은 경인선 중 승객이 가장 많은 역 중의 하나로 변모해 1999년 1월 29일에는 서울행 복복선 직행 열차의 시발역이 됐고, 인천지하철과의 환승역이 됐다.
현재 인천지하철을 이용하는 하루 승객수는 약 20만 명이다. 이 중에서 부평역을 이용해 서울로 가거나 인천으로 오기 위한 환승객수은 하루 11만 명이 넘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100여 년 전 부평역 인근 주민들이 친숙하게 사용했다는 ‘동수재이’라는 명칭은 사라지고 대신 조선시대부터 사용해오던 ‘부평’이란 명칭은 지금까지 남아 이름을 뽐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1995년 3월 ‘북구’가 분구되면서 부평구와 계양구로 불리었고 이후 개통된 인천지하철 역명은 부평을 지나면서 부평역, 부평시장역, 부평구청역으로 제정됐으니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부평’이란 안내방송에 화들짝 놀랄 만하지 않겠는가.
경인철도와 지하철의 개통과 함께 부평은 인천의 상징 이름이 됐다고 할 정도로 크게 변모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부평’이란 말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혼돈하지 말고 주의해 이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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