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곶해빈과 콩돌해빈
인천의관광/인천의섬
2008-06-09 08:38:39
이우평의 인천기행
백령도 사곶해빈과 콩돌해빈
한국 기독교 전파의 산실
한국 기독교 전래와 선교의 역사는 19세기 개항의 물결이 봇물처럼 밀려들어온 때와 시기를 같이한다. 그 선교의 물결이 가장 먼저 닿은 곳이 이곳 백령도이다.
백령도 남서쪽 해안에는 옛날 중국배들이 우리나라를 오갈 때 기항하여 식량과 식수, 부식 등을 마련하여 며칠 씩 묵어갔다는 데에서 유래한 중화동(中和洞)이란 작은 포구가 있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뒤편으로 한적해 보이는 언덕배기 초입에 아담한 교회 하나가 서 있는데, 이 교회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생긴 교회로서 백령도가 한국 기독교 전래의 선구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교회가 세워진 것은 1884년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의 소래교회이다. 이곳에 뒤이어 백령도의 중화동 한문서당에서 백령도진의 참사벼슬을 지냈던 허득(許得)을 비롯한 몇 사람이 모여 예배를 드린 1898년 8월 25일(음력, 양력 10월 9일)이 백령도 중화동 교회설립의 시초가 되었다. 개화기 당시의 초기교회는 지금의 교회와 같이 번듯한 교회건물을 지어 창설된 것이 아니라 몇몇의 교인들이 사랑방에 함께 모여 앉아 예배를 보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이 두 교회가 주목받는 것은 바로 한국의 교회 개척사에서 선교사의 도움 없이 한국인들 스스로가 세운 자생교회라는 점이다.
교회 옆으로는 30평 규모의 기독교 역사관이 나란히 위치해 있다. 내부에는 초기 중화동 교회의 모습을 비롯하여 최초 백령도에 복음이 전파된 경로, 서양 선교사의 활동내역과 방문모습, 역대 성직자 사진 등이 마련되어 있어 한국 기독교 초기선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백령도는 19세기 격동기를 겪고 있던 한국사에서 기독교가 최초로 전래된 선교의 중심지로 ‘기독교 역사의 산실이자 요람’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의의 때문에 중화동 교회는 백령도를 찾은 관광객들이라면 꼭 둘러보는 곳이다.
고운 모래 둥근 자갈 … 규암 박물관
■ 사곶해빈
육지와 백령도 간의 여객선이 들고나는 용기포 선착장을 빠져 나와 통일 기원탑을 지나면 곧 바로 왼편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드넓은 모래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썰물 때 물이 빠지면 나타나는 길이 약 4km, 폭 약 300m에 달하는 거대한 회백색 모래사장인 사곶해빈(海濱)이다. 사곶해빈은 모래의 질이 곱고 부드러워 해수욕장으로도 유명하지만, 특히 비행기가 뜨고 내릴 만큼 널찍하게 펼쳐진 백사장이 있어 천연 비행장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사곶해빈은 백령도를 이루는 주 암석인 석영질 규암이 오랫동안 해수에 의해 침식을 받아 쪼개지고 닳아서 형성된 고운 입자의 모래가 파도의 에너지가 약한 오목한 해안을 따라 쌓여 형성된 것이다. 사곶해빈은 썰물보다는 밀물이 보다 강하기 때문에 모래가 계속적으로 운반되어와 쌓일 수 있었다.
해빈의 모래는 실제로 자동차가 시속 약 100km 이상의 속력으로 달려도 바퀴자국이 생기지 않을 만큼 단단하기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 군용 비행기의 비상 활주로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천연 비행장이란 별칭이 붙었고 사곶해빈은 이탈리아의 나폴리 해빈과 함께 세계에서 단 두 곳밖에 없는 자연 비행장이라고 한다.
사곶해빈이 간이 비행장으로 사용될 만큼 단단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분급이 양호한 세립질 모래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조간대 퇴적환경 특성상 오랜 세월에 걸쳐 주기적인 조수의 영향을 받아 치밀하게 다져져 있기 때문이다. 둘째, 주변해역의 해류가 너무 세기 때문에 점토질 같은 미세한 퇴적물은 이곳에 쌓이질 못하고 조수 및 해류와 함께 먼 바다로 쓸려나갔기 때문이다. 셋째, 썰물시 다져진 세립질 모래 퇴적물의 작은 입자들 사이의 틈새에 남아 있는 바닷물이 표면장력으로 모래입자들을 서로 견고하게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5년 화동과 사곶 사이의 농지조성을 위한 간척지 개발로 백령둑과 백령대교가 건설되면서 사곶 앞바다 해수의 흐름이 변하여, 점토질 퇴적물이 이전처럼 먼 바다로 쓸려나가지 못하고 사곶해빈으로 가까이 유입되어 체류하면서 사곶모래에 점차 엉겨 붙고 있다. 그 결과, 과거에 비하여 모래바닥이 현저하게 물러지면서 간혹 자동차들이 모래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여 바닷물에 잠기는 웃지 못 할 광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알록달록 자갈밭 감탄이 절로
■ 콩돌해빈
사곶해수욕장에서 남서쪽으로 더 내려가면, 남포리 오군포 남쪽 해안에 남북으로 길이 약 1,500m, 폭 약 50m 크기의 띠 모양의 동글동글한 자갈들이 해변을 가득 덮고 있는 진풍경이 나타난다.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콩알만 한 크기의 자갈들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이름 붙여진 콩돌해빈이 바로 그곳이다.
강낭콩 또는 메주콩 같이 생긴 흰색, 갈색, 회색, 보라색, 적갈색, 검은색 등 형형색색의 자갈들 위에 서있노라면 마치 자갈들이 재잘거리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실로 자갈밭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발에 닿는 감촉 또한 부드럽다. 또한 여름철 한낮이면 뜨겁게 달궈진 자갈 위로 발찜질을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대기도 하여 그야말로 천연 찜질방이 따로 없는 셈이다.
콩돌은 사곶해빈의 모래와 마찬가지로 백령도의 모암(母巖)인 규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포리 콩돌 해빈의 양쪽 끝 부분에는 규암으로 이루어진 절벽들이 해풍과 파도에 깎여나간 채 돌출되어 있다. 콩돌들은 이 돌출된 양쪽 해안절벽들 사이에 활모양으로 구부러진 오목한 형태를 띤 해안에 집중적으로 쌓여 있다. 인접한 해안의 규암 퇴적층에 발달한 단층과 절리면을 따라 파도와 빗물, 바람 등에 의해 침식과 풍화가 집중되어 규암절벽에서 암편들이 하나 둘씩 바다로 떨어져 나갔다. 이후 바다에 떨어진 규암조각들이 파도에 의해 해안으로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반복작용을 계속하며 구르고 굴러 점차 동글동글하게 마모되어 콩알 크기의 자갈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콩돌들이 쌓여 있는 해안은 몇 개의 계단상의 둔덕을 이루는 형태를 띠고 있다. 콩돌들이 쌓여 있는 계단상의 둔덕을 지형학 용어로 ‘범(berm)’이라고 하는데, 이는 해안선과 평행하게 발달해 있다. 이들은 해안 상에 서로 다른 고도를 유지하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조석간만 등 해양조건과 바람 등 기상조건에 따라 에너지의 세기가 각기 달라지는 파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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