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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

북성구지

by 형과니 2023. 5. 5.

북성구지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06-12 10:55:41


북성구지

외국인묘지라고 하면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 많을 것이다. 혹 1960년대에 송도역 앞 청학동으로 이전했음을 기억하는 시민이 있겠지만 외국인묘지는 지금 완전히 잊혀진 곳이 되고 말았다.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각국지계가 구획되고 사망하는 외국인이 발생하자 바닷가 언덕에 설치한 것이 인천의 외국인묘지 시초이다. 지금의 만석동과 북성동 경계로 경인철도를 넘어가는 송월동 고가교에서 북쪽으로 위치했다.

송도로 옮기기 전만 해도 사각형으로 두부모를 베듯 아카시아숲이 우거진 작은 동산이 외국인묘지였다. 그리고 임자없는 무덤이지만 더러 학생들이 미화봉사를 하느라 비교적 깔끔했었다. 그러던 묘지가 1965년 송도로 가고 주변에 공장과 창고가 들어서면서 흔적도 찾아보기 힘든 곳이 되었다.

그러나 광복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신태범 박사의 ‘인천한세기’에 의하면 학생시절 신박사는 그곳에 처음 갔었다고 한다. 일대에는 숲이 우거지고 예쁘게 손질한 화단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닷가에 쌓아올린 돌축대 밑으로는 바닷물이 출렁거렸다고 한다. 인천에 살다가 돌아간 일본인들이 오래전 만든 작은 책자 ‘인천에의 추억’에도 어렸을 적 또래끼리 손에 손잡고 그곳에 갔었다고 하는데, “묘지에는 화원이 있어 훌륭한 놀이터였다”고 적고 있다.

그곳이 자유공원, 곧 각국지계에서 흘러나온 뿌리 ‘북성구지(北城串)’였다. 그리고 그곳은 개항 이전부터도 어선들이 드나드는 북성포구였다. 이훈익옹의 ‘인천지지’는 개항 당시 그곳에서 있었던 두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나는 북성포 뒷산의 이모씨 가문의 묘지 이장건이요, 또 하나는 국유지였던 이곳을 미국인이 잘못 사들여 횡포를 부렸다는 사연이다.

옛날 발밑에까지 밀었던 바다는 대한제분 뒷편으로 물러나 그곳에 작은 포구를 이루고 옛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진입로가 좁지만 밀물에 어선들이 들어올 무렵이면 제법 활기도 띤다. 어물이 비교적 저렴하며 가건물 음식점에서 잠시 비릿내를 만끽할 수도 있다.

지난주말 옛 모습을 되찾자는 북성포구 풍어제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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