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영동의 옛모습과 현재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6-11-16 00:34:00
창영동의 지명 유래
금창동은 본래 인천부 부내면 금곡리와 우각동 지역인데, 해방 후 금곡리 지역은 금곡동이 되고, 우각리 지역은 창영동이 되었으며, 1985년 11월 15일 시조례 제1895호(1985. 9. 19 공포)에 의거 금곡동과 창영동을 통합하여 그 머리 글자를 따서 금창동이라 하였다. 금곡동은 본래 인천부 부내면 금곡리 지역으로서 '쇠골' 또는 '금곡'이라 하였는데. 일제인 1914년 4월 1일부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금곡리라 하였다가 1946년 1월 1일부터 금곡동이 되었다.
그 후 1949년 8월 15일 인천부를 인천시로 고치는 동시에 금곡동을 갈라서 금곡1동과 금곡2동으로 분동하구 다시 앙동을 합쳐 금곡 1,2동으로 하던 것을 1977년 5월 10일 금곡 1,2동을 금곡동으로 개칭하고, 1985년 창영동과 합쳐 금창동이 된다. 금곡동에는 현재 서적 상들이 몰려 있고 또 오래된 영화관 중의 하나인 피카디리 극장(구 문화극장)이 있었다.
창영동은 본래 인천부 부내면 우각리 지역으로 그 지형이 소의 뿔처럼 생겼다 하여 '쇠뿔고래.쇠뿔.솔뿌리 고래' 또는 '우각동·우각현·송근현'이라 하였다. 그 후 일제 때인 1914년 4월 1일부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우각리로 하였다가, 1936년 제1차 부역확장 때 창영정이라 하였으며. 해방 후 1946년 1월 1일부터는 동명 개정에 따라 창영동이 된 것이다. 창영동이란 새롭게 번창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에서 생긴 동명이다. 창영동에 현재 영화초등학교와 창영초등학교 기독교사회복지회관, 창영교회 등 교육문화 시설과 많은 고서방들이 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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