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부두의 옛모습과 현재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6-11-16 00:31:18
만석부두
인천시 동구 만석동과 화수동에는 3곳의 부두(포구)가 있다. 매립의 역사와 함께 생겨난 북성포구와 화수부두, 그리고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만석부두.
이들 세 부두는 공장 사이 사이에 숨어 있다. 아는 사람만 알고, 그나마 아는 사람들에게도 잊혀지지 않았나 생각드는 곳에 있어 찾기 힘들다.
1900년대 초반 만수동과 화수동, 송현동, 북성동 해안을 본격적으로 매립하면서 이 일대에는 큰 공장들이 들어선다
동일방직과 대성목재, 한국유리 등 공장들이 굴뚝에서 연신 검푸른 연기를 뿜어내기 이전만해도 이 곳에는 소나무가 무성했고, 산 부리가 괭이(고양이) 모양을 한 작은 섬이 있었다.
매립의 역사가 써지기 이전에 ‘괭이부리’는 돌출된 해안이었다. 그 모양이 ‘고양이를 닮았다’하여 이름도 괭이부리라 불렀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괭이갈매기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얘기도 있다. 여하튼 괭이부리는 옛 인천팔경의 하나로 ‘묘도석조’(描島夕照·괭이부리 석양)가 들어갈 정도로 아름다운 섬이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곳에 있는 북성포구와 화수부두, 만석부두는 매립의 역사가 써진 이후 들어선 부두다.
화수부두는 70년대까지만 해도 ‘조금사리’만 되면 고기를 가득 실은 어선이 수 없이 들어와 배를 델 곳이 없어 싸움박질이 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조기부두라 불릴 정도였으니 말이 필요없다. 공판장은 물좋은 고기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한쪽에선 땔감을 자르는 톱소리에 도끼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젖갈류 점포들이 부두의 분위기를 한층 더해 준 곳이었다.
사람들이 사라지면 정박한 배위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대나무로 만든 엉성한 낚시대 하나로 망둥이를 낚아올리던 재미도 화수부두에서 겪을 수 있었다. 90년대 말 망둥이 낚시 대회가 이 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지금은 오래전 영화는 간데없고 정박해 있는 몇 척의 배만이 쓸쓸함을 더 해 줄 뿐이고, 공허한 국회의원들의 개발공약만 난무할 뿐이다.
화수부두에 가면 5∼6곳에 이르는 횟집이 있다. 커다란 간판을 내걸고 밝은 조명을 밝히진 않았지만, 회를 먹는지 밑반찬을 먹는지 모를 정도였던 시내 횟집에서의 경험을 이 곳에선 할 수 없다. 대신 듬성듬성 썰어놓은 자연산 횟감엔 인정이 넘쳐흐른다.
화수부두에서 200m 정도 대우종합기계를 지나 신만석고가 쪽으로 가다보면 새로 들어선 만석주공아파트 앞 편에 만석부두로 향하는 길이 오른쪽으로 나 있다.
양편에 늘어선 ‘무슨 무슨 유선’ 간판을 따라 골목길 안쪽 깊숙이 들어가면 선착장이 눈에 띈다. 연안부두를 떠올린다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형색이지만 ‘꾼’들에겐 이미 유명한 곳이다.
음력 8일과 23일 물살이 약해지는 ‘조금’ 때를 지날 즈음이면 낚시대를 들쳐 멘 꾼들로 만석부두는 성황을 이룬다. 아직 물이 차 꾼들의 발길이 뜸하지만 4월이 되면 조금 사리할 것 없이 수시때때로 배가 뜬다.
바다낚시를 떠나는 꾼들이 찾는 곳은 남항도 있지만 만석부두는 그만의 장점이 있다. 이 곳에서떠나는 대부분 낚시배는 10명 안팎을 태울 수 있는 작은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 배에서 자리 차지하려는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게 이 곳 사람들의 귀뜸이다. 꾼들이 빠져가나간 뒤 한적함을 느낄 수 있다.
'인천의 옛모습' 카테고리의 다른 글
60년대 살아가던 서민들의 삶의모습들 (3) | 2023.05.08 |
---|---|
배다리의 옛모습과 현재 (3) | 2023.05.08 |
인천교의 옛모습과 현재 (1) | 2023.05.07 |
창영동의 옛모습과 현재 (0) | 2023.05.07 |
인천의 옛모습 (0) | 2023.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