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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관광,가볼만한곳

월 미 도 한·국·전·통·정·원

by 형과니 2023. 5. 10.

월 미 도 한·····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7-19 00:38:52

 

자연 벗삼아 숨쉬는 한국의

5만여에 전국 유명한 옛정원 20여곳 재현

부용지·서석지궁궐·민간·별서정원 다양

 

20080719() 강승훈shkang@kyeongin.com

 

매련지

 

월 미 도 한·····

 

젊은 시절 누구나 한번쯤 다녀갔을 인천 월미도. 그 길을 약간 못미친 월미공원 입구에는 지난해 9월 문을 연 '한국전통정원'이 있다. 서부공원사업소(소장·김학열)2004년부터 3년간 180억여원의 예산을 들였다. 5만여터에 국내 전역의 옛 정원 20여 곳이 재현됐다. 배경은 행궁이 위치했던 조선시대를 시점으로 당시 대표적 정원양식을 정()과 원()으로 구분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정했다. ''이란 담에 둘러싸인 곳에 식물과 경물로 조형된 공간이고, ''은 자연속에서 인간이 함께하는 장소다. 여기서는 다도·도자기 체험 등 문화행사와 각종 놀이가 상시적으로 열려 가족, 연인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주요 시설물을 역사적 해설과 함께 만나보자.

맨 먼저 만나는 곳은 아미산 굴뚝. 조선 태종은 경복궁 서쪽에 큰 연못을 파고 경회루를 세운 후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 교태전 뒤뜰에 인공동산을 세웠는데 이를 아미산이라 했다. 이 굴뚝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온돌방 밑을 통과해 연기가 배출되는 시설이다. 6각형의 벽에는 덩굴무늬, , 봉황, 소나무, 매화, 불로초, 사슴 등 무늬가 조화롭게 배치됐다. 윗부분은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했고 연기가 빠지는 작은 창도 설치됐다.

 

경복궁 궁궐마당은 1963년 사적 제117호로 지정된 서울 세종로에 있는 정식 궁궐이다.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조선을 세운 이성계와 그 지지자들이 고려의 서울이던 개경으로부터 도읍을 한양성으로 옮겨 신도(新都) 경영에 착수했다. 1394(태조 3) 9월 새로운 궁궐을 짓기 위한 회의기구를 두고 그해 12월부터 주·야로 작업을 진행, 13959월에 낙성을 보게 됐다. 이름은 '새왕조의 큰 복을 기원한다'란 의미의 경복궁이다. 궁내에 준성된 전각은 총 390여 칸이었다.

 

 

초가

부용지는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연못이다. 정조 원년(1777) 처음 불렸고 장방형의 형태를 취한 못속에는 원형의 섬이 배치됐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났다'는 중국 전통적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음양오행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연못 한쪽에 위치한 정자는 과거 급제한 이들에게 술잔치를 베풀어 주던 장소다.

 

'연꽃이 피는 연못'을 뜻하는 애련지는 부용지와 같은 장소에 위치하지만 못 중앙의 섬이 없다. 숙종 18(1692)에 조성된 연못으로 애련이라는 명칭은 송나라의 유학자 주렴계가 연꽃을 사랑해 쓴 '애련정기'에서 따온 말이다. 모양은 네모 반듯하고 불로문 북쪽에 놓여 북쪽에는 방형의 정자가 마련됐으며 서측으로 입수구가 있다.

 

 

소쇄원

국담원은 18세기 초 일어난 이인좌의 난 당시 의병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학자·의병장 주재성의 공을 기리기 위해 민중들이 경남 함안군 무기리에 조성한 연못이다. 국담은 장방형으로 물에 근접할 수 있는 계단이 있다. 주재성은 '국담 주변에서 못의 경관을 감상하며 즐겁게 살고 있는데 어찌 큰 벼슬 따위와 바꿀 수 있겠는가'라는 뜻을 가진 하환정을 지어 놓고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문인 양산보(梁山甫)1520~1557년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출세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지은 소쇄원. 별서정원(別墅庭園)으로 세상을 등지고 자연속에서 숨어살기 위한 장소로 물과 대나무가 어우러진 절경이 일품이다. 담장으로 둘러쳐진 내원과 마을쪽의 계곡을 따라 올라간 뒷산 옹정봉에 이르는 외원으로 구성됐다. 현재 남아 있는 사적 제304호 담양소쇄원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그의 손자 양천운(梁千運)1614년에 재건한 것이다.

 

서석지는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조선 광해군 5(1613) 성균관 진사를 지낸 정영방(石門 鄭榮邦) 선생이 만든 조선시대 민가(民家)의 대표적인 못(池塘)이다. 선생은 주변 경관이 수려한 자양산(紫陽山) 남쪽 기슭인 이곳에서 살았고 서쪽 구릉 아래에 흰 돌이 서있는 곳에 못을 파 서석지라 한후 그 위에 정자를 세웠다.

 

 

양진당

민가 정원으로는 양진당을 비롯해 조선시대 중부 지방의 서민주택의 건축적 요소를 반영시킨 초가를 그려냈다. 과거 초가는 부엌, 안방, 대청마루, 건너방을 일자형으로 배치했으며 인근에 농업체험장을 두고서 농경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논과 밭을 이뤘다.

 

양진당은 조선시대 대 유학자 겸암 류운룡(柳雲龍) 선생이 거주했던 풍산류씨의 북촌을 대표하는 종가집.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중심에 위치한 17세기 초 건물로 류 선생의 아버지인 입암 류중영의 고택을 뜻하는 현판 '입암고택(立巖古宅)'이 걸렸다. ''자형의 안채를 기준으로 앞면 동쪽에는 문간채가, 뒷면 사랑채 등 3곳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보인다. 후원의 동북쪽에는 2채의 사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