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
仁川愛/인천의 인물
2008-07-21 09:57:30
'왜 쓸데없는 짓을…' 모두 만류
30년 세월 척박한 토양을 옥토로 일구는 마음 뿐
‘새얼백일장’, ‘새얼아침대화’하면 이젠 대부분 새얼문화재단을 떠올린다. 지난 1975년 설립된 새얼문화재단은 3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며 지역의 문화토양을 비옥하게 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재단의 설립자이자 현대사 격동기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지용택(69) 이사장이 있다.
재단 설립 30년, 격변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 인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재단의 성격과 규모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십시오.
새얼문화재단은 시민문화재단이다. NGO와 마찬가지지만 재단형태로는 최초인 경우다. 광주 ‘누리재단’이 인천을 벤치마킹했다. 현재 자본금이 약 50억원인데 모두 시민의 정성과 참여로 이뤄졌다. 이렇게 모인 회원이 1만명을 넘는다.
= 지금까지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습니다. 대표적인 활동을 소개해 주십시오.
새얼아침대화는 지난 1986년 4월 8일 제1회가 개최된 이래 매월 둘째주 화요일 오전 7시 시작이라는 원칙을 고수해가며 232회에 이르기까지 이어오고 있다. ‘가곡과 아리아의 밤’을 20회에 걸쳐 개최했으며 매년 개최해 오던 새얼백일장도 이제 20회를 헤아린다. ‘황해문화’는 세계적 시각에서 지역을 보고 지역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상호침투적 시각으로 인천문화의 부흥을 꿈꾸는 새얼문화재단의 취지에 따라 1993년 12월에 창간한 계간 종합인문교양지이다. 이밖에도 소중한 사업들이 많지만 생략하겠다.
여러 가지 일을 해오면서 새얼은 대규모의 사업, 다른 단체가 이미 진행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손을 대기보다는 작지만 아직 자리잡지 못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한번 시작한 일은 중단없이 계속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 소개해주신 활동과 인천이란 지역적 의미를 찾는다면?
30년전 재단을 만들겠다고 나설 때 주변에서 모두 만류했다. ‘인천은 안된다. 단결력과 구심점이 없다. 왜 쓸데없는 짓을 하려 하느냐’는 이유였다.
그때 나는 ‘만일 안된다면 왜 안되는지 후배에게 바로 알려야 한다. 그래야 능력 있는 후배가 해결할 것이다’라는 신념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뜻밖에 시민호응과 협력에 힘입어 꿈을 현실로 이루었다.
혹자는 ‘새얼이 인천에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라고 놀란다.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내가 깃발을 먼저 들어올렸을 뿐이다. 인천서 살지 않으며 또 살 것도 아니면서 ‘인천은 ~’라고 쉽게 말해버린다.
사실 인천은 한반도의 중심이다. 예전에도 인천에 오기만 하면 고루 다 잘 사는 도시였다. 일할 힘만 있어도 먹고사는 문제가 없었다. 세계 각지의 문물이 집중됐다 분산되는 도시이기도 했다. 가능성의 도시이자 풍요로운 땅이다. 새얼의 성공은 한 예일 뿐이다.
= 현재 인천은 도약과 확장의 추세에 있습니다. 각종 개발계획이 수립되고 있으며 이미 추진되는 사업도 많습니다. 그간 나름대로 지역 발전에 노력해온 분으로서 어떻게 진행되리라 예상하시는지?
모두 잘되리라 본다. 인천은 바다가 열려야 성공한다. 이제 불가능해 보이던 북한의 문이 열리고 인천을 통한 개성관광 길이 놓였다. 앞으로 황해가 다시 떠오를 것이고 그 중심에 인천이 있다. 긍지와 자부심을 갖으면서 동시에 꼼꼼하게 실리를 따져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 이사장님은 지역 원로로서 다양한 세대와 계층으로부터 널리 존경을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개인적인 소감은?
그런가? 일부러 애쓴 것은 아니다. ‘역지사지’의 이치를 자연스럽게 실천해서랄까? 남의 이야기를 편안히 듣고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내가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좋아해서 그런가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 하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개인적인 소신 가운데는 앞선 이들은 희생까지는 아니지만 봉사의 마음으로 헌신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 동양제철화학의 송암미술관이 얼마전 인천시에 무상기증된 바 있습니다 인천의 문화유산이 한층 풍요로워진 계기였는데 평가와 활용방향에 대해 의견이 있으시다면?
상당히 기분 좋은 사건이었다. 잘 운영할 바탕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인천 문화발전을 위한 초석으로 적절히 활용되어야 한다. ‘아트센터’와 같은 개념이랄까. 전문가 배치와 유지·관리를 위한 충분한 예산 확보가 필요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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