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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

유랑하는 안식처

by 형과니 2023. 5. 11.

유랑하는 안식처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07-25 19:55:26


유랑하는 안식처


제물포역 북광장 쪽으로 선인고등학교가 자리한 위치에 중국인묘지가 있었다. 낮으막한 언덕으로 길이 나고 키큰 미루나무가 늘어선 양켠에 묘지가 자리했었다. 봉분으로 혹은 사각의 붉은 벽돌 구조였다. 그곳이 인근 어린것들의 놀이터였는데 벽돌 묘지는 부자요 봉분은 가난한 중국인의 묘지라고 여겼었다. 그 시절 그곳으로 향하는 중국인 장례행렬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두사람이 가마를 메듯 세워서 운구하는데 그것을 중국인은 굴장을 하기 때문이라고 어른들이 말했었다. 그리고 경내에는 중국인들의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당면을 만들었는지 시내에서 부녀자들이 그것을 사러 왔었다.


그 이전 중국인 묘지는 시내 복판의 내동에 있었다. 오늘날 내리교회 뒷편 성공회 언덕 아래 비탈이었다. 그곳을 의장지라고 하여 원래 청일전쟁 당시 전사한 청군 병사들을 매장한 곳이었다. 지금도 당시의 사진이 더러 보이는데 성공회 언덕에서 내려다 보고 찍은 장면이다. 그곳이 시가지 중심이 되면서 “제물포에서 십수리 떨어진 지방에 있는 산지를 택하여 매장의지를 만들고 식수 및 수직건물을 수축 한다”는 1884년 조선과 청국 간의 ‘인천구화상지계장정’에 의하여 교외의 부천군 다주면으로 옮겼다. 그곳이 대지가 오늘의 남구 도화동 선인고교 자리이다.


중국인 묘지는 두번째 이전을 하게 된다. 1961년이었다. 도시계획과 시가지 확장에 따라 인천대학교가 들어서면서 만수동의 국유지 3만여평을 확보하고 옮겼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다시 그곳이 1980년대 초 택지개발지역이 되면서 부평 가족공원으로 더부살이 이전을 했다.


그런데 보도에 의하면 그곳 조차 편안치를 못하다고 한다. 가족공원 조성계획에 따라 진입도로와 조경공간에 저촉된 중국인 묘지 68기가 다시 이전할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인천의 화교들-그들 중국인은 누구인가. 한세기 훨씬 이전 그들이 어려웠던 시절 고향과 나라를 떠나 새 삶터를 찾아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의 후예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들의 넋조차 안식처를 못찾고 유랑하는 신세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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