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감 있는 ‘故 박현식씨 훈장’ 추진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7-09 13:05:53
늦은감 있는 ‘故 박현식씨 훈장’ 추진
‘아시아의 철인’ 故 박현식(1929~2005)에 대한 국민훈장 청룡장 추서 추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인천야구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인천시야구협회는 협회와 인천시, 대한야구협회, KBO 등 4개 기관의 추천서를 오는 24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내기로 했다. 그가 훈장을 받는다면 한국야구 100년 만에 첫 야구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박현식은 동산중(현 동산고)에서 야구와 인연을 맺은 뒤 인천 야구의 발전과 한국 야구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20여 년 선수 생활동안 112개 홈런(비공식)을 쳤고, 9개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만큼 만능이었다. 선수 생활 뒤 은행 지점장 자리를 맡았지만 초대 삼미슈퍼스타즈 초대 감독으로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1991년 LG 2군 감독을 끝으로 야구장을 떠난 뒤에도 그는 매년 연말 골든글러브 시상식 등 각종 야구 시상식에 시상자로 참여했고,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등을 통해 옛 삼미의 팬들과 만남을 가졌다.
암 투병 생활을 하던 2005년엔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으로 야구사 발굴과 야구인 재조명 사업을, 그해 6월엔 ‘제60회 청룡기대회’에 출전한 모교 동산고를 응원하기 위해 동대문구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죽음을 한 달 앞둔 7월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 시구자로 나설 정도로 야구에 대한 그의 사랑은 지칠 줄 몰랐다. 대한야구협회와 KBO에선 그의 장례를 최초의 ‘야구인장’으로 치렀고, 지난해 프로야구 SK와이번스는 그의 야구 열정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역 우수 선수들에게 ‘박현식 타격상’과 ‘유완식 투수상’을 시상하고 있다.
그의 인생 전반을 본다면 훈장은 이미 추서됐어야 했다. 그가 죽은 지 3년이 돼서야 작업이 진행되는 것에 야구팬으로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했던 그였지만 정작 팬들의 무관심 속에 그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야구팬으로서 깊이 반성하고, ‘구도(球都)’ 인천의 자존심을 다시 세웠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