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미 이야기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07-09 12:17:29
도리미 이야기
인천시 중구 도원동의 옛이름은 도산정(桃山町)이었다. 일제 강점기 그곳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인천엔 또하나의 도산정이 있었다. 지금의 남동구 도림동(桃林洞)이다. 옛부터 복숭아밭이 많아 복숭아골이라 한데서 그렇게 이름지었다고 한다. 원래는 부천군 남동면 소속이었다가 1940년 인천부에 편입되면서 신도산정(新桃山町)이라 했다가 1946년 일제식 동명을 고치면서 도림동이 되었다.
그러나 도림이든 도산이든 복숭아밭이 있어 그렇게 불렸다는 설은 한자풀이식이요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듯하다. 그것은 오봉산 북쪽에 위치하는 도림동에 동그란 작은 산이 있어 도리미 혹은 도리라 불렸다는 마을 유래가 더 타당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곳에는 아직도 도리 여무실 등 아름다운 지명이 산재하고, 이후 등장한 복숭아 과수원이 있으나 배밭이 많을 뿐더러 당도가 높은 남동배를 개발해 전국 각지에 공급하고 있다.
아무튼 도림동은 소래포구와 논현신도시가 가깝고 다섯 봉우리가 길게 누워 아늑하게 감싸안는 오봉산으로 인해 녹지공간이 풍부하다. 그리고 물이 좋기로 이름난 오봉산 약수가 인근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근래에 주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서서히 아파트단지가 되어갈망정 전형적인 전원지역이다. 홀로 외롭던 도림초등학교는 도림고등학교에 물려주고 아파트단지 곁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학교 이웃인 과수원 뒷편 오봉산 기슭의 인천시기념물 제7호인 조정만묘가 무관심속에 훼손되고 있다고 한 주간지가 보도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문인 학자인 정이 조정만(定而 趙正萬) 선생은 송시열 문하생으로 숙종7년(1681년) 진사시에 장원 성균관에 입학했다. 경과 시에 능했으며 그의 경연을 경청한 임금이 호피를 하사했다는 설화가 있다. 여러 지방의 목사가 되고 정헌대부와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왕위계승문제로 일어난 신임사화로 평북 벽동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수원부사 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아무리 옛 선현의 묘소라고는 하나 일단 시기념물로 지정했으면 문중에만 의존치 말고 관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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