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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의 미추홀

인천의 정체성 

by 형과니 2023. 5. 13.

인천의 정체성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09-04 12:30:54

 

인천의 정체성 

조우성의 미추홀

 

저 고구려의 비류(沸流)가 산 넘고 물 건너 백성들과 고생 고생하여 다다른 곳이 미추홀이었다. 지금의 남구 문학산 일대였는데, 물이 짜서 농사를 짓지 못해 건국(建國)에 실패하였다는 것은 그와 백성들의 비운이었다.

 

그러나 비류가 백성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세계사 어디에도 보기 힘든 자긍(自矜)의 이야기다. 시쳇 말로 비류는 노불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양심적 지도자였던 것이다.

 

인천사를 비극의 역사라고 보는 것은 근시안적인 입론일 밖에 없다. 더불어 그에게서 비롯된 양심의 실천과 그 옛날 미추홀까지 이주해 온 개척 정신이야말로 인천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예라 하겠다.

 

1902년 우리나라 최초였던 하와이 이민도 그렇다. 지금도 부모형제와 고국산천을 떠나 산다는 것이 어려운 마당에 한 세기 전 태평양의 고도로 이민을 간 선대(先代) 대부분이 인천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주목할 점이다.

 

그것은 비류가 신운명을 개척하고자 고국을 떠났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특히 선대들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후에 거금을 보내 인하대학교를 설립하게 했다는 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자랑스러운 역사다.

 

인천사랑운동협의회(대표 정명환)가 최근 새 운동 방안을 모색하는 모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시공(時空)은 다르지만 인천 사람들 대다수가 국내외 이민자요, 정신사적으로는 비류의 후예이며, 인천의 정체성은 바로 '양심적인 개척 정신'에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소중한 정신적 유산(遺産)이다.

 

/객원논설위원 조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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