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球都)인천이 부끄러운 이유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8-09-21 23:30:58
구도(球都)인천이 부끄러운 이유
이원구 문화체육부장
지난 5일 74년간 ‘구도(球都) 인천’의 야구역사를 간직해온 숭의야구장에서 마지막 공식경기가 열렸다. 지난해 말 이미 인천시야구협회 차원에서 고별전을 겸한 납회경기를 치른 터라 별도 행사는 없었지만, 시상식을 마친 중등부 선수들이 인천 야구팬들에게 큰절로 답례하는 모습을 바라본 시민들은 감회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1934년 문을 연 숭의야구장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그리고 실업야구에 이은 프로야구 전성시대를 겪으며 인천시민들과 애환을 함께해 왔다. 건립 당시 일제 강점기의 지명을 따 모모야마(桃山) 야구장으로 불리기도 했던 숭의야구장은 태평양전쟁 말기 야구가 미국 스포츠라는 이유로 일제가 갈아엎으면서 고구마·감자밭으로 바뀌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직후에는 폭격으로 부서진 야구장 담장 대신 미군에서 얻어온 드럼통을 세워놓고 경기를 치르며 제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그 후 숭의야구장은 1964년 인천에서 열린 전국체전을 계기로 잔디가 깔리고 실업야구와 함께 야간조명이 들어서는 등 현대화 과정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렇듯 우여곡절을 겪어온 숭의야구장의 마지막 모습도 그리 순탄치 않을 모양이다. 대체구장 없이 숭의경기장 일대 도심재생사업을 추진해온 인천시가 야구관계자들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1년 넘게 지역의 야구인들과 줄다리기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숭의야구장 일대는 당초 2013년까지 축구전용구장과 주상복합단지를 갖춘 시민 휴식공간과 함께 리틀야구장의 건설이 추진됐었다. 하지만 FIFA규격에 맞춘 축구장의 위치변경을 위해 리틀야구장의 백지화가 불가피해진데다 대체구장 마련을 요구하는 야구인들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일단 법적 검토 없이 인천대공원 일대를 대체구장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이 소식에 일단 야구인들의 반발은 수그러들었고 인천대공원 부지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뒤늦게 파악한 인천시는 최종적으로 송도LNG종합스포츠타운 내 실내연습장과 보조구장을 포함한 2면의 경기장을 내년 3월까지 완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사를 맡고 있는 인천종합건설본부도 야구협회와 3차례 자문회의를 통해 시설 요구사항을 수렴하는 등 야구인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듯 했다.
야구인들의 요구는 외야석은 없더라도 기본적으로 1·3루측 각 500석 정도의 관중석과 중앙에 선수·감독·심판·기록실 등 부속실 등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터파기공사에 들어간 최근 주경기장은 1·3루좌석은 물론 기본적인 기능실도 없고, 보조경기장은 덕아웃조차 없는 설계도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야구인들이 또다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프로야구단이 함께 사용할 실내연습장(100억원 소요)을 함께 짓다 보니 당초 250억원보다 90억여원이 초과한 340억원이 들어 야구인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없었다는 답변이다. 결국 아마추어 선수들을 위한 야구장 하나 없이 지역 프로구단을 배려한 100억원짜리 실내연습장은 짓겠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전 대구시 수성구가 지역 리틀야구 붐조성에 기여하기 위해 수성구 팔현마을 내 금호강변 둔치에 리틀야구 전용 경기장을 건설할 계획이라는 발표를 했다. 수성구는 이곳에 리틀야구 공식경기를 치를 수 있는 야구장 2면과 성인규격 경기장 1면을 조성하고 리틀야구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야구장 내·외야에 천연잔디를 심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리틀야구장은 고사하고 일반대회를 치를 수 있는 변변한 야구장 하나 없게 된 인천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속이 터질만한 소식이었다. 아시안게임을 유치하고 동북아 대표도시를 꿈꾸는 ‘구도 인천’이 대구의 기초자치단체만도 못한 시설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야구협회는 실내연습장 건설 여부와는 관계없이 기본적인 대회가 가능한 경기장을 지어주기 전까지는 숭의야구장 철거를 위해 협회 사무실을 비워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그동안 고군분투한 인천시의 담당부서도 대체구장 마련을 놓고 1년 넘게 힘겹게 만들어낸 야구인들의 신뢰를 한순간에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야구인들이 더 분통터지는 건 인천시의 책임자가 74년 역사를 안고 사라지는 숭의야구장을 바라보며 애환에 젖는 인천 야구인들의 마음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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