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비행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10-11 20:42:45
희생 비행
요즘 저녁나절이면 북쪽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떼가 쉽게 발견된다. 어떤 때는 한줄이요 두줄이기도 하고 소규모이기도 한데, 반드시 사람인(人)자를 지어 날아오느라 친근감을 준다. 리더를 선두로 편대를 이루어 마치 장유의 질서를 지키는 듯하다. 그래서 이를 두고 예의를 아는 새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사실은 선두가 날개짓을 하면 뒷쪽으로 상승기류가 발생, 이를 뒤따르는 녀석들이 힘들이지 않고 비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희생정신을 교훈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한강하구에 기러기떼가 도달했다는 본보의 보도가 있거니와, 인천의 저녁하늘 높이 날아 남으로 향하는 녀석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마도 남양반도나 평택 벌판 아니면 더 멀리 충남의 간척지 쯤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곳엔 물이 흔하고 머지않아 추수를 거둬들이고 나면 흩어진 먹을거리가 풍부하겠으니 말이다. 그곳에서 녀석들은 겨울을 나게 된다.
기러기의 고향은 북쪽 멀리 시베리아의 툰드라 지역이다. 그곳은 번식지이기도 해서 그곳에서 여름철에 알을 낳고 부화하여 새끼가 날을수 있기까지 대기했다가 가을이면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피한여행을 하는 것이다. 아시아는 중국 동부와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 등지이며 구미지역으로는 영국과 발탄반도이다.
이같은 기러기의 생태를 터득한 사람들은 기러기를 향수의 새로 여겼다. 기러기를 두고 이별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거니와, 엄마 찾아 헤매는 안타까운 동요도 있다. 지금은 편지 쓰기가 시들하지만 예전에 편지를 안서(雁書)라고 했던 것은 중국 한나라때 소무(蘇武)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소무는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회유를 거절, 오늘날의 바이칼호 인근에 유배되어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을 때 편지를 써서 기러기 발에 달아 날려 보냈다. 그것을 받아본 황제가 소무를 구출할 수 있었다. 실로 19년만의 일이었다고 한다.
전에는 기러기가 날아올 무렵이면 이를 잡겠다고 먹이에 농약을 섞어 논바닥에 뿌리는 몰지각한 인심이 있었다. 희생을 알고 장유를 아는 미물의 짐승에게 이런 짓거리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