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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야외로 나온 시화 … 가을을 음미하다

by 형과니 2023. 5. 16.

야외로 나온 시화 가을을 음미하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8-11-05 21:00:07

 

야외로 나온 시화 가을을 음미하다

도시축전 성공기원 전시회 성공리에 마쳐

 

배다리에 있는 봉강 최규천의 서예 연구실.

이조 시대에 사랑하는 여자에게 증표로 줄 수 있는 남자의 사랑법은 무엇일까?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중에 이()를 생시에 빼는 일이 아닌가 한다.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뽑은 이를 사랑의 증표로 주었다니 사랑의 표현치고는 우매할 정도의 극치다.

 

시인 김수영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할 때 "시간이 지겹고 하여 이를 하나씩 뺐다"는 말도 있기는 했다만. 역시 시인 김수영은 시인다운 신드롬이 있는 시인이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틀니()를 해넣기 마련, '임플란트'라는 시술 방법이 없던 때라 끼웠다 뺐다 하는 틀니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틀니에 대한 옛 추억담 하나로 가신님을 그려보자.

 

촌로들과(고여, 창전, 남곡, 그리고 백낙종)의 저녁 산책을 끝내면 들르는 대포집. 어느 곳이라 할 수 없이 급하면 급한 대로 들르는 대포집, 거나하게 취한다 싶으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뒷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우물우물 우선생부터 틀니를 싸기 시작했었다.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윗 저고리 속 주머니에 넣고 술들을 자셨으니 안전하기야 이를 데 없지 않은가. 더욱이 걸리적거릴 것도 없어 주()도 도()를 찾아 잘 넘어 갈테고.

 

후일 담으로 전해 주었던 백낙종 서양화가의 말(?)인즉 취하고 또 취해서 그 밤이 새도록 마신 연유로 외박 아닌 외박을 고여 집에서 한 백낙종 선생은 동춘동(송도)에서 영원히 빛날 이야기를 쏟아 놓게 됐었다.

 

고여 선생의 틀니를 물을 분 유리컵에 담아 앉은뱅이 책상에 놓았던 것을 갈증이 나 더듬거리던 차 옳다거니 물인 줄 알고 한숨에 들이켰으나 무엇이 입안으로 툭 떨어지더라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더듬어 만져보니 틀니였다는 말, 시인들이나 있을 법한, 그것도 괴짜 시인 천상병 같은 일을 만들어 낸 두 분들의 일화는 긴 날을 두고 웃음보따리를 짠 화두였었다.

 

()를 음미하기 좋은 이 가을은 술 마시기도 좋은 계절, 적당히 취한 김에 시 한편 낭송할 때 가을은 정말 가을다움이 아닌가 한다. 연극보고 울고, 소설 읽고 울지만, 시 낭송듣고, 낭송하며 우는 사람들은 없어도 이 가을 시로 인하여 우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다 용서되는 때. 허나 삶의 원형을 보는 즉흥적인 결과의 탐닉을 멀리하자.

 

전국적으로 놓고 봐도 인천은 최초 그리고 최고가 많은 도시다. 그 중에도 문학판에서 시화전(詩畵展)이 초시라고 할 수 있다.

 

1956, 인천문학협회가 주관한 광복경축시화전을 신포동 '유토피아' 다방에서 개최한 것을 필두로 오늘에 이어진 시화전은 서예가와 화가들을 괴롭히며 문인들의 전시 행사로는 유일한 보여줄 거리다. 이제 실내를 벗어나 야외로 찾아가는 문학의 행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도시축전의 성공을 기원하며 42점의 시화를 가지고 찾아가는 전시회가 얼마 전 문인협회 주관으로 월미도, 종합문화회관광장, 터미널 지하철역사에서 베풀어져 시민들의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던 시화전이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화가들의 말로는 시화(詩畵)를 그리고 쓰는 작업(?)이 가장 어려운 행위예술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리 간단치 않은 것이 이 시화전이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생경한 전시회요, 글과 그림 그리고 서예가들의 솜씨를 한 눈에 보는 즐거움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힘든 작업이 이 시화전이고 보면 덧없이 감사한 분들은 서예가와 화가들이 아닐 수 없다.

 

1988'88서울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시화전이 있었다. 주무책임을 맡은 고 이석인(당시 부지회장)의 다급한 전화를 받게 되었다. 젊은 서예가 오 아무개가 두주불사로 인하여 개막에 맞추지 못한다는 턱에 바튼 말. 그 밤으로 미리 주문한 표구집에 연락하며 칫수를 알아 동구 송림동에 서예 연구실을 운영하는 서예가 봉강 최규천을 찾아 사연과 상황을 전하고 그 밤을 꼬박 세우며 싫단 표정없이 일필휘지 급살로 표구를 마친 월요일 아침, 유리는 끼지도 못한 채, 내빈을 맞이한 개막, 비로소 한숨을 돌린 그날의 아슬한 추억 같지도 않은 추억담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번 시화전에도 소설과 산문의 긴 문장을 잔 글씨로 쌈박하게 수고해 준 봉강을 생각하면 고맙기 그지 없다.

전시라는 것이 본시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주최자와 행위자의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관람자들과의 말없는 약속인 만큼 꼭 지켜져야 될 중천금(重千金) 보다 더한 약속이 아닐 수 없다.

 

간혹 전시장에 그림이 걸려있어야 할 공간이 그대로 남아있는 벽, 그 벽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은 민망함.

! 거참 쑥스럽네.

 

/ 김학균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