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홀의 조선회상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11-17 01:00:53
닥터 홀의 조선회상
11월도 중순에 접어드니 크리스마스 계절도 다가온 듯하다. 벌써 크리스마스실 보도가 있으니 말이다. 크리스마스실은 결핵퇴치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발행하는 일종의 증표이다. 성금 형식으로 시민은 그것을 구입하여 우편물을 발송할 때 우표와 함께 예쁘게 붙여 보낸다. 그러나 우표는 아니다. 이렇게 모금된 돈은 결핵퇴치에 쓰인다.
크리스마스실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한 사람은 서양인 셔우드 홀이다. 그는 1893년 선교사 양친 사이에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태어난 서양인이며, 노구를 이끌고 우리나라에 돌아와 죽어 우리나라에 묻힌 의료 선교사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의 활약상을 1984년 ‘닥터 홀의 조선회상’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해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그의 부친 윌리엄 제임스홀은 청일전쟁으로 만연한 전염병 치료에 전념하다 희생된 분이다. 모친 로리타 홀은 인천의 기독병원과도 관련이 있다. 그녀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설립하고 인천에 분원을 여는데, 그것이 오늘의 인천기독병원으로 성장한다. 2대에 걸친 이들 선교사 가족은 지금 서울의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잠들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셔우드 홀을 기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크리스마스실을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실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시절 그는 실을 통해 우리의 민족혼을 불어넣는데도 기여했다. 1932년 처음으로 만들어진 실에는 남대문이 그려져 있었다. 당초 이순신 장군을 의식해 거북선을 그려 넣었는데, 일인관리가 방해해 우리나라 방어의 상징인 남대문으로 바꿨던 것이다.
그가 결핵퇴치에 헌신하게 된 동기는 모친의 조수였다가 우리나라 최초 여의사가 된 에스더김이 결핵으로 숨진데 충격을 받아서이다. 그때 소년 셔우드 홀은 한국의 결핵퇴치에 앞장서기로 결심해 도미하여 의학을 공부하고 결혼하여 돌아와 우리나라 결핵퇴치에 투신하는데, 그것이 해주구세병원이다.
홍보에 들어간 올해의 크리스마스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과 우주과학이 소재로 되어 있다고 한다. 한장씩이라도 실을 사면서 한번쯤 예전 선교사들의 수고도 회상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