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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

길내고 섬이 된 사연

by 형과니 2023. 5. 17.

길내고 섬이 된 사연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8-11-26 22:31:31


길내고 섬이 된 사연

김포공항과 지척이면서도 인천의 대표적인 오지가 계양구 상하야동 지역-속칭 ‘벌말’이다. 동서와 남북으로 도로가 관통하여 육지속의 섬이 되어 있다. 이곳을 벌말이라 한 것은 굴포천이 통과하는 벌판의 마을이라 해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상류를 윗벌말, 하류를 아랫벌말-이를 한자화하여 상야(上野)동·하야(下野)동이라 했다. 평동(坪洞) 역시 들평(坪)을 빌어 동명이 되었다.

이 지역은 원래 한강의 유역으로 홍수가 나면 물바다가 되었다. 배가 드나들던 곳이라 하여 지금도 ‘배나드리말’로도 불린다. 하류의 김포군 전호리도 예전 섬이었다. 이 지역 지형이 어떠했는지는 고려때 계양원님으로 부평에 와있던 이규보의 ‘망해지(望海誌)’로도 알 수 있다. 이런 대목이다. “길이 사면으로 계양지경에 났는데 오직 한면만이 육지로 통하고 삼면은 모두 물이라…물이 푸르고 넓어서 섬 가운데 들어왔는가 의심하여”

이곳이 오늘과 같이 육지화한 것은 1925년 일제가 농지개량을 실시하면서이다. 조기준의 ‘부평사연구’에 의하면 중국 산둥성의 중국인 노무자를 데려다 한강변에 둑을 쌓고 경지를 정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해 수해로 한강이 범람해 부평평야가 망망대해를 이루었는데 그중 벌말일대의 피해가 극심했다고 한다. 그것이 유명한 을축년 물난리이다.

이곳의 지형은 병자호란때 청군 진로에도 방해를 주었다. 강화도를 함락한 오랑캐병이 서울로 향하여 이곳을 지나는데 김득남 장군이 굴포교를 결사 방어했다. 결국 침략군은 별도의 교량을 가설해 서울과 남한산성으로 진격할 수 있었다. 김득남 장군은 이곳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이것이 병자호란의 벌말싸움이다.

벌말이 국책사업으로 상처투성이라고 한다. 각종 도로건설로 먼지 폐수에 시달리는 데다 마을이 고립되고 있다고 한다. 벌말은 이미 쓰레기매립지도로·서울외곽순환도로·영종공항고속도로 등으로 이리 잘리고 저리 쪼개져 있는데 최근 굴포천 방수로 공사에 따른 제방도로가 한창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마을은 고립되고 주거지의 기능도 상실되고 있다. 길내고 섬이 된 딱한 마을이 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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