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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시련의 항구' 숱한 문학작품 무대로

by 형과니 2023. 5. 19.

'시련의 항구' 숱한 문학작품 무대로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1-10 22:33:07

 

'시련의 항구' 숱한 문학작품 무대로

근현대 배경 불의 제전 중국인 거리 등 탄생

 

오정희 소설의 무대 <중국인 거리> 현재의 풍광.

논어(論語) 첫머리의 문장을 보면 매우 친숙한 문장이 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문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체본으로 남겨줄 뜻 있는 말로써 '논어' 20편중 첫편이 이 구절로써 구절의 이름 또한 학이(學而)편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뜻은 그리 녹녹한 것이 아니다. 바로 배울 학()은 막연한 뜻이 아니라 효()나 깨달을 각()과 관계가 찰떡같아 곧 배움이란 앞 사람을 따르며 본받는 일에서 시작해서 스스로 깨닫는 일까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는 앞과 뒤를 이어주는 역할로 막연하게 말과 말을 잇는 단순 '어조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의 어록으로서 빛이 나는 것 아닌가 한다.

 

하여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하였던 것이다. 머리에서 굴려볼 일이 있다. 조선조의 신동 김시습(金時習)의 이름이 이 '학이' 편에 의해서 지은 이름이라니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이치를 배운다 했지만 성장하면 선생이 필요하게 된다. 그 배움이 그로 인하여 주입되는 것으로 꼭 학문이라고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것들, 다 선생, 선배들에게 제자와 후배들은 본받아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을 세우는 것이 아닐까 한다.

 

'논어''학이'편에서 처럼 뒤를 따라 가는 것 조차 좋아했던 나 이제 생각하니 잘한 듯 싶구나, 촌로들의 스밈, 그리고 그늘을 만들어 후학들을 껴안아 보듬는 '공자'같은 마음, 한 해의 시작점에서 더욱 생각남은 왜 일까.

 

주는 것 없는 것 같으나 시도때도 없이 주는 깊은 우물속의 그 시원한 맛 같이 들려주던 선대의 풍물 이야기 참으로 기쁘고나.

 

꼭 이맘때 눈이 복숭아 뼈까지 차오른 정초 송도에 묻혀 살던 '문조' 선생은 '새한도'속의 선비처럼 따스웠다. 일년내내 곰삭은 모과주 들고 찾아 세배드리던 그 때 남곡, 창전 선생들과 몸 좌로 혹은 우로 기우려 드는 잔은 정()의 즙 이었다.

 

 

시인 김학균

눈 내린 날의 뒷 끝은 푹은함으로 도리어 길 나서기 좋은 날, 누구의 발의랄 것도 없이 고(), GO 시내(市內).

 

멀리 보이는 수리봉이 백발이 되어 햇빛에 찬연히 부서지고 있으며 중국으로 가는 사신(使臣)들의 지름길 해로(海路)의 선착장 능허대, 이마 부위까지 눈을 올려뜨면 보이는 삼호현에 다다르니 술 기운에 달뜬 촌로들 "무슨 소리 않들려?"하며 뜬금없이 농처럼 들리던 별리(別離)고개 설명 뒤 황당무개(?)한 또 잊지못할 짙은 농 인즉, 문학봉과 노적봉 사이를 잘 보란다. 본시 산과 산사이에 곡()은 험란하고 숲이 우거지게 마련이지만 은유의 말인가(?) 꼭 여체의 깊은 곳으로 표현 하고자 푼 촌로들의 상상력 이야말로 젊은이 못지 않으이, 오래 사실것만 같았었다.

 

질척질척한 도심의 길, 발 디딜때마다 들리는 소리 또한 음담(?)설로 표현 누가 들을세라 귓전에다 말 놓고 웃는 창천선생 번역문학과 소설을 않하셨다 누가 말할까.

 

응봉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앞바다는 말없이 출렁 눈()속에서 표구 된다. 상륙작전으로 산발한 발치 아래의 항구는 작품을 낳고 희비를 엇갈리게 하는구나.

 

불의 제전의 김원일은 인공치하속 서울을 묘사하며 연합군 인천상륙으로 패퇴의 길에 오른 사회주의자 조세민의 모습과 함께 적치하의 시절을 환희의 시절로 바꿔 그려 놓았고 시장과 전장의 박경리는 인천을 거쳐 입성한 국군이 한강 경계로 진을 치고 있는 극한의 배경을 작품속에서 잘 묘사케 했던 항구는 기억을 저만치 현실의 저편으로 밀어내며 눈을 머리로 받고 있구나.

 

소설 청관의 주인공 진대인 처럼 조금은 중국스러운 창전은 그곳(청관)이 오는 길이건 가는 길이건 소설의 공간으로 충분한 곳이라고 했지만 정작 당신께선 명실상부한 작품을 남기질 못했으니 눈 제대로 감으셨는가 싶다.

 

"공원의 뒤쪽 성당에서 끊임없이 종을 치고 있었다." "아니 그 이전부터 우리 뒤를 따라오며 머리칼을 당기던 소리였다."

 

"문학작품속의 인천 풍광"이라는 제목아래 숱하게 골라 쓰게된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의 한구절인데, 1955년 잠시잠깐 인천의 응봉산아래 일본식 집에 머문 기억을 더듬어 쓴 작품으로 이만큼 오늘날의 '차이나 타운'을 잘 그린 글 있을까만, 정작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에는 인천이라는 지명이 나오질 않고 다만 항구도시로만 묘사되어 있다.

 

"공원의 꼭대기 전설로 길이 남을 것이라는 상륙작전의 총지휘관이었던 노장군의 동상이 있었다."과연 그렇다. 어느 도시 공원에 노()장군의 동상이 있을까 싶고 상륙작전이 타 항구에서 있었던가

 

금방알 수 있는 터.

 

곡절 많은 근, 현대사의 족적을 몸에 바르고 있는 개항장 정초의 모습, 멀리 바다에서 '노마'가 할아버지를 부르고 있다. 현재덕 (현덕의 본명) 할아버지를.

 

/김학균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