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교학교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1-15 23:07:10
차별 속 ‘존폐위기’…한국인에겐 ‘인기’
세계경제의 핵 화교-19) 한국 화교학교
세계의 많은 화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세계 경제의 핵으로 부상한 것이 아니다. 오랜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다. 그 숱한 노력들 중 하나가 바로 교육이다. 모든 부모의 마음도 그러하듯이 후대의 자손들이 더 나은 미래를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세계 화교들은 자녀들의 교육에 지극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대를 이어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화교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화교학교를 설립하여 2, 3세를 교육하고, 중국의 전통과 문화를 물려주었다. 마찬가지로 한국 화교들도 한국에 화교학교를 설립을 통해 자녀들의 교육을 신장시키려 했다.
우리나라에 화교 학교가 처음으로 설립된 것은 1909년 한성화교소학교였다. 한국 화교들은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지 불과 10여년 만에 화교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화교들은 가족을 고향에 두고 왔거나 가족과 함께 왔더라도 한국에 오래 거주할 생각이 아니라 중국의 어려운 상황이 끝나면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머물러 있는 화교 자녀의 수가 적었다. 그러한 조건 속에서도 화교들이 이렇게 빨리 교육기관을 설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화교들이 자녀교육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만으로 학교를 설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화교학교가 일찍 설립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한국 화교들이 동향회, 동업조직 등 사회, 경제적인 화교 조직을 빠르게 형성하여 협력하고 있었음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명동에 있는 한성화교소학교는 국내 최초로 정식인가를 받은 외국인 교육기관이다. 또한 한성화교소학교를 시점으로 화교들이 많이 거주하는 각 지역에 화교학교가 설립되었다. 특히 신의주의 화농소학교, 화공소학교, 화상소학교와 같은 학교들은 부모의 직업에 따라 농업, 공업, 상업으로 나뉘어 교육을 받기도 하였다. 화교들이 성장함에 따라 화교학교의 규모도 성장하여 한성화교소학교의 경우에는 1970~1980년대에 학생수가 2천300명에 달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규모의 학교였다.
한국 화교 학교는 대만의 학교 교육 방침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대만의 교과서를 사용하기 때문에 중국어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또한 한국 정부에서도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한국어를 일주일에 3시간 가르쳐야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화교 학교 교육과정에 아무런 규제를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교 학교는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교 학교를 졸업한 화교들은 한국의 대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없었다. 따라서 화교 학교 졸업자들은 검정고시를 통해 한국의 대학교에 입학해야 했다. 하지만 중국어로 대만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화교들에겐 검정고시와 대입은 높은 장벽이었다. 반면 대만에서는 오히려 화교에게 학비와 기숙사비 등을 어느 정도 지원해 주고 있다. 그래서 많은 한국 화교들이 대만의 대학교에 진학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
화교학교의 새로운 변화
학생 수 감소로 폐교하거나 운영난 허덕
화교 학교는 민족 교육과 더불어 화교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또 한국 정부 역시 화교 학교를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화교학교에 대해 특별히 규제를 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학생 수의 감소로 화교 학교의 운영이 어려워졌다.
학생 수가 감소한 원인은 크게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 원인은 재 이민을 떠나는 화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제적, 사회적인 이유로 형편이 어려워진 화교들은 한국을 떠나 미국, 대만 등지로 또다시 이민을 떠난 것이다. 두 번째 원인은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한 자연 인구증가가 둔화이다. 광복 이후 한국 화교의 인구증가는 대부분 자연증가에 의존하였다. 하지만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해 화교인구 증가가 둔화된 것이다. 세 번째 원인은 한국인 학생의 화교 학교 재학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화교 학교에는 한국인 학생들도 입학이 가능하였으나 1975년 이후 한국인 학생은 화교 학교에 재학이 불가능해 졌다. 마지막으로 한국인과 결혼하는 화교가 늘면서 자녀를 한국 학교에 입학시켜 화교 학교의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
학생 수가 감소하자 여러 화교 학교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1974년 50개였던 화교소학교는 1994년에는 34개로 줄어, 현재 우리나라에는 27개의 화교소학교가 있다. 이렇게 반 가까이 되는 학교가 문을 닫았지만 그나마 남아 있는 학교들도 지원금이나 기부금 등으로 근근이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갑작스럽게 변하게 된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중국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자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화교학교에 편입 또는 입학시킨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학부모들의 입학 문의가 이어지기 시작해 현재는 인천, 수원, 원주화교소학교를 비롯한 거의 모든 화교학교가 한국인 학생을 받고 있다. 이러한 학교들은 화교와 한국인의 수가 반반이거나 혹은 오히려 한국인 학생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이렇게 화교 학교가 인기를 누리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일단 저렴한 가격으로 해외유학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화교 학교는 중국어 교과서로 중국인 교사에게 화교학생들과 함께 교육을 받기 때문에 마치 중국 현지에서 어학연수를 받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수업료는 분기당 40만~50만원으로 해외 어학연수에 비하면 크게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화교 학교 교육과정이 대만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대만은 중국과 달리 간자체가 아닌 번자체, 즉 우리나라와 같은 강희자전체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한문을 익힐 수 있다. 또한 발음은 중국 표준어인 북경어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교육부의 지침에 따르면 외국인이거나 외국 영주권. 시민권이 있는 경우, 또는 부모 한쪽이 외국인이거나 5년 이상 해외에 거주한 한국인에 한해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따라서 화교 학교에 입학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교 학교의 인기가 아직 식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소장·이승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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