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교동을 회상한다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9-01-15 22:48:59
관교동을 회상한다
〈권순우의 세상밖으로〉
‘너바나’라고 하는 미국의 유명한 밴드가 있었다. ‘커트 코베인’이라고 하는 기타 치고 노래하던 천재적인 사람이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해서 더욱 유명해진 밴드이기도 하다. 물론 살아있을 때도 엄청 유명했지만. 그런데 이 밴드를 이야기 할라치면 꼭 미국의 시애틀이란 도시가 입에 오르내린다. 시애틀 그런지니, 시애틀 4인방이니 하면서 도시의 이름이 꼭 등장을 한다. 입소문이겠지만 시애틀이 정말 많은 밴드들의 요람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우리에겐 그런 도시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서울 대학로, 홍대, 신촌 그리고 대구 어딘가 에도 있고 부산에도 밴드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들이 있다. 바로 인천의 관교동이다.
2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 밴드들의 안식처(?)가 그곳에 있었다. 정말 많은 밴드들이 자신들의 꿈을 쫒아 열심히 활동하던 그런 동네가 있었다. 정확한 통계야 없지만 기억에 100여개의 팀은 넉넉히 헤아릴 정도였다. 어떤 누군가는 200여개 정도라고 하니 정말 많은 밴드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맞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시절 그 밴드 중 하나였으므로. (지금도 왠지 모를 미소가 나오는 기억이다. 아마도 역사의 증인같은 느낌일 것 같다.)
그들은 가격이 싼 지하실이 많아서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그 소문 때문에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모이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연습만 관교동에서 하고 정작 설 수 있는 무대를 찾아 서울로 다녔다는 것에 있었다. 그나마 동인천 신포동 쪽에 있던 소극장들은 경영의 어려움으로 거의 문을 닫은 상태였고 소위 클럽이라고 하는 밴드들의 무대도 인천에는 없었다.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이라는 근사한 공간에는 밴드를 위한 배려가 없었다. 무슨 오페라, 무슨 뮤지컬, 무슨 앙상블, 누구 귀국 독주회 등 이런 현수막을 보며 그 앞을 지나다닌 기억이 난다. 그래서 조금씩 떠나기 시작했다.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결국은 다 떠났다. 그러고 나니 인천시에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유치한다. 재밌지 않은가! 그런 과거가 속이 상한 문화인들이 있었나 보다.
3년 전 ‘소풍’이라는 소극장을 만들어 누구나 쓸 수 있도록 내주어 잔잔한 감동을 전했던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가 이번엔 ‘놀이터’라는 만남의 장소를 공개했다. 모임, 개인연습, 밴드합주, 사진, 그림. 또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문화에 관한 모든 모임을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 가는 그런 공간이다. 특별히 주인도 없고 관리인도 없단다. 모인 사람들 스스로 운영하고 청소하는 방식이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무언가 숨통이 좀 트이는 듯한 느낌이다.
그때 그 관교동 시절에 소풍같은 공간, 놀이터같은 공간이 조금만 있었다면 인천의 문화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적어도 지금의 홍대주변문화정도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문화의 메카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자 바람일 수 있다. 하지만 큰 돈 들여서 1년에 몇 번 유명한 사람들 불러서 공연한다고 그 도시가 문화적으로 높이 평가되는 것이 아니란 건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자연스레 제2, 제3의 소풍과 놀이터가 나와야 한다. 대중들이 즐기는 문화는 큰 돈 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 필자는 2001년 1집 ‘과거’를 시작으로 음악활동을 시작, 2006년 2집 ‘달잡이’를 발매한 락 가수입니다. 주로 대학가에서 많은 공연을 하며 특히, 우리 사회 현안에 관한 행사에 주로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OBS경인TV의 한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참여해 TV문화비평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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