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교의 특징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2-10 16:43:21
비슷해지는 생활…점차 ‘한국화’
세계경제의 핵 화교-22) 한국 화교의 특징
화교들은 정착한 나라에 따라 각각 다른 색을 보여준다. 각 나라의 화교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화교에게도 세계 화교들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아니, 한국 화교는 화교들 중에서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세계에 퍼져있는 화교들은 대부분 남중국해(南中國海)를 건넜다. 그것은 화교들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 중국 남부에 있는 동남아시아를 발판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화교들의 86%가 집중되어 있는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화교는 중국 남부 연해지방 출신이다. 무엇보다도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이 있었던 것이다. 반면 한국 화교의 95%이상이 산둥성 출신이다. 한국 화교들은 황해를 건너오거나 만주를 경유하여 육로를 통해 한국으로 왔다. 중국 북동쪽에 위치한 산둥성에서 남부지방을 가려면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고도 한번을 더 가야하는 거리이다. 서울과 부산만 해도 작게나마 문화차이가 나는데 비록 같은 중국인이라 하더라도 중국 남부지방과 산둥성의 문화적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고도 남음이 있다. 또 언어 면에서도 세계 대부분의 화교들은 광둥어를 쓰는 반면에 한국 화교들은 베이징어를 쓴다.
이렇게 대부분의 화교들과는 다른 출신으로 시작한 한국 화교는 또다시 특수한 경우에 놓이게 된다. 바로 한국인 사회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화교들이 한국에서 지내기 시작한 역사도 오래되었거니와 현재 많은 한국 화교들이 한국인과 결혼하여 어머니가 한국인인 화교들이 늘고 있다. 비록 그들이 화교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교들도 교육열이 높은 편이지만, 우리나라 맹모(孟母)들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화교들도 이 영향을 받아서 교육열이 대단히 높다. 그 결과 한국에서 성장한 화교의 90%이상이 대학을 졸업했다. 그들은 화교 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또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며 한국어를 익힌다. 거기에 영어나 그 밖에 제 2외국어를 익혀 대부분이 2~3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음식도 한국인과 비슷하게 먹게 되었다. 원래 산둥지방의 음식은 중국 북방요리의 대표격이다. 이번에 올림픽이 개최된 베이징(北京)의 음식도 이 산둥지방의 음식과 맥을 함께 하는 것이다. 산둥지방의 음식은 고온에서 단시간에 익히는 볶음 류가 많다. 그래서 느끼한 음식이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의 음식을 생각해 보면 어느정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탕 류의 얼큰한 음식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맵게 먹지는 않는다. 그런데 오랜 한국 생활로 인해 한국 화교들은 입맛도 한국화 되어 한국인과 비슷하게 음식을 맵게 먹게 되었다.
또 성격도 한국화 되었다. 중국인의 성격으로 만만디(慢慢的)를 자주 이야기한다. 중국인들의 느긋한 성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격이 급한 편이라 ‘빨리빨리’라는 말을 자주한다. 한국 화교들은 이런 점에서도 한국인의 영향을 받아 한국인처럼 ‘빨리빨리’는 아니지만 비교적 급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한국 화교의 꽌시
‘혈연 지연 업연+학연’ 결속력 강화
화교는 결속력이 좋기로 유명한 집단이다. 특히 꽌시(關係)는 화교들의 결속력을 견고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꽌시가 없었다면 화교들은 타국살이의 고됨을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꽌시가 있었기 때문에 전 세계로 펼쳐진 화교 네트워크가 등장하게 되었고, 그것이 세계경제의 핵으로 비상하는 화교들의 날개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이런 결속력이 강한 화교들 속에서도 한국 화교들의 결속력은 특히 견고하다. 한국 화교들이 결속력이 강한 이유는 이 꽌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꽌시는 기본적으로 혈연(血緣), 지연(地緣), 업연(業緣)의 관계인데, 한국 화교들의 결속력 강화에는 이 세 가지 관계가 맞물렸다.
먼저 지연을 살펴보자. 지연은 바로 살고 있는 지역을 연고로 한 관계를 말한다. 한국 화교들이 한국에 살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거론할 것도 없다. 하지만 출신 지역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화교는 모두 중국이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한국 화교는 산둥성 출신이다. 대부분의 화교와 문화도 언어도 다른 것이다. 따라서 화교들 사이에선 소수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한국 화교들에게 지연적(地緣的)인 유대감을 촉진 시켰을 것이다.
업연의 경우에서도 한국 화교들은 특별하다. 한국 화교들은 한국 정책의 영향 때문에 동종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광복이후 무역업이 쇠퇴하고 요식업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한국 화교의 70%가 요식업에 종사하기도 했었다. 최근에는 직업이 전문화되고 다양화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형성된 유대가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지연과 업연이 겹쳐지자 혈연도 이어지게 되었다. 한국인과 결혼하는 화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화교간의 결혼을 했다. 한국의 외국인 출입규제, 중국의 외국이동금지로 인해 한국 화교가 고립되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이렇게 지연, 업연으로 이어진 화교들은 결혼을 통해 유대가 더욱 강화되었다.
혈연, 지연, 업연도 중요하지만 한국 화교 사회의 결속을 강화시켰던 것은 바로 학연(學緣)이다. 화교 학교는 화교들의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 기본적인 목적이었지만, 그러면서도 결속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기관이었다. 한국 화교들은 90%이상 한국 화교 학교 출신이다. 이들은 전통을 학습하면서 문화적 유대감을 키우고 학교 선후배 관계를 통해 화교 사회의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속력은 한국 밖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살기 어려워 대만, 미국등의 지역으로 재이민을 간 화교들은 현지 화교들과도 교류를 했지만, 한국 화교끼리의 유대를 계속 이어왔다. 따라서 한국 화교만의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생겨난 것이다. 비록 그 수는 적지만 한국 화교만의 강한 결속력은 앞으로 한국 화교의 성장을 기대하게 한다. 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소장·이승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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