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개항기 외국인묘역 문화·외교적 활용 검토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4-10 18:44:44
새로운 가치 만들어낼 망자(亡者)의 땅
인천시, 개항기 외국인묘역 문화·외교적 활용 검토
연수구 청학동 외국인묘지
인천에 살면서도 우리 동네에 외국인묘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그 역사적 연원이나 조성과정을 파악하고 있기란 더욱 그렇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겠으나 인천에는 일본인, 중국인묘지와 함께 서양 사람들만 묻히는 묘지가 있었다. 이들은 한국 근대사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면서 오늘날에도 각별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인천시는 연수·부평구 등에 흩어져 있는 외국인묘지를 한 곳에 모아 역사유적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는 올 하반기부터 외국인묘지의 역사·외교적 가치와 보존 방안 등을 검토하는 학술 연구에 착수해 2016년까지 사업을 끝내겠다는 생각이다.
인천에 산재한 외국인묘역의 기원
현재 인천의 외국인묘지는 총 7만2460㎡부지에 13개 나라 2977기가 조성돼 있다. 부평구의 인천가족공원에는 지난 1989년부터 1990년에 조성된 화교묘역(6만㎡, 2천860기)과 조성 시기를 알 수 없는 일본인묘역(60㎡, 51기)이 자리하고 있다. 연수구 청량산에도 개항(1883년) 이후 1965년 만들어진 외국인묘역(1만2400㎡)에 미국, 이태리 등 11개 나라 66기의 묘가 안치돼 있다.
1883년 강제개항 후 이권을 노린 일본·청국·러시아·미국·영국 등 열강들이 물밀 듯 인천 땅에 상륙함으로써 외국인들이 북적이게 됐다.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가운데 노환 또는 각종 사고로 사망하는 이들을 위해 공동묘지가 만들어졌다. 유해를 본국으로 보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다.
인천가족공원 화교묘지
화교분묘는 1884년 2월 우리 정부와 청나라가 맺은 ‘인천구화상지계장정’에 의해 제물포 인근 도화동 인천대학교 자리 야산에 처음 들어섰다. 1970년 인천대학교가 건립되면서는 만수동 묘지공원으로 이전됐다. 이후 1981년 9월 구월지구 토지구획정리 사업으로 가족공원에 옮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족공원 화장장 맞은편에는 묘비만 세워진 일본인묘역이 있다. 1902년 중구 율목동 일본인 공동묘지로 흩어져 있던 묘들이 옮겨져 관리됐다. 하지만 1922년 숭의공설운동장 야구장 정문 건너편으로 또 다시 옮겨간 후 당시 일본인묘지에 있는 묘비 중 일부가 현재의 가족공원 내 자리로 이전됐다.
연수구 청학동 외국인묘지는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1883년부터 1950년대까지 국내에 머물던 외국인들을 안장한 묘지로 원래는 중구 북성동 1가 1번지에 형성됐었다. 1941년 이곳의 일부가 철도부지로 수용되고 1950년 6·25로 인해 부분적으로 훼손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 인천시가 복원, 1965년 5월 청학동으로 자리 잡았다. 개항기 인천에서 활동한 상인, 외교관, 선교사와 선원 등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인천가족공원 일본인묘역
망자(亡者)의 땅, 새로운 가치 만들고 빛내야 할 곳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훼손된 이들 외국인묘지는 그러나 결코 무시해도 좋을 대상만은 아니다. 연고자 파악이 어렵고 관리의 손길이 꾸준히 미치지 않아 사실상 방치됐었지만 ‘망자의 땅’은 인천에 대한 대외 신인도를 높인다거나 정책적 외교의 소재가 될 만하다.
화교분묘의 경우 한국인천화교협회를 통해 연고자 확인이나 관리가 가능하고 일본인묘지는 2007년 유족이 단체로 방문하는 등 부정기적으로나마 관리되는 상태다. 청학동 외국인묘지도 드물게 해당 대사관과 영사관에서 찾고 있다.
시는 대외 이미지 제고를 위해 외국인묘역의 대대적인 정비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 외국인 묘지가 인천에 조성됐다는 사실이 문헌상으로만 있고 정확한 역사적 고증이 없는 상황에서 통합적인 관리를 통해 인천에 기여할 역사·외교적 가치를 발굴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청학동 외국인묘지는 각국의 묘지양식을 한눈에 볼 수 있어 학술적 활용과 묘역의 후손 초청 등 인천의 대외 외교력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관리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묘지가 훼손되는 문제에 노출돼있다. 국제적인 이미지 실추마저 우려되는 대목이다.
인천가족공원 전경
외국인묘역 통합 조성 후 문화·외교적 활용
이에 따라 인천시는 연수구와 부평구 지역에 분산돼 있는 외국인묘지를 한 곳에 모아 역사유적지로 조성하는 사업을 2016년까지 끝낼 방침이라고 최근 밝혔다.
이번 계획은 시가 가족공원 생태공원화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화교묘지 이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됐다. 한국인천화교협회의 중국인 전용묘역 조성요구를 시가 수용하면서 인천지역 내 외국인 묘역을 한 곳에 모아 역사기념지로 만드는 사업추진안이 도출됐다.
시의 인천가족공원 생태공원화사업은 도심 속의 혐오시설로 여겨지는 공설묘지에 현대적인 납골시설과 함께 휴양·휴게시설을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단계별로 2021년까지 총 1,406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고 나면 추모의 분위기와 자연, 휴식이 어우러진 환경친화 장묘시설이 탄생한다.
도심속 1,668,729㎡(약 50만평) 규모에 1940년대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난립한 묘지가 모여 형성된 부평공설묘지는 현재 약 5만여기의 분묘가 무계획적으로 만장된 상태다.
외국인묘지 통합 조성을 위해 시는 우선 외국인묘지의 역사성과 외교적 가치성, 보존성 등을 검토하는 학술연구를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장사시설에 관한 조례 개정이 상반기 중 추진되며 제2회 추경에 학술연구 용역비(5천만원)도 반영하게 된다.
인천시 관계자는 “이들 묘지가 나라 별 특성 없이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어 외국인묘지의 역사성과 외교적 가치, 보존성, 관광 상품화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학술연구를 실시키로 했다.”며 “묘지 연고자를 파악하고 인천가족공원 내에 외국인 묘역을 특화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다만 앞으로 관계기관이나 단체와의 긴밀한 협의도 필요하고 연수구 외국인묘역은 연수구청과 시의회 등을 대상으로 한 설득이 이뤄져야 하는 등 외국인묘지 통합 조성계획을 확정하기까지 풀어야 할 몇 가지 현안이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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