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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인물

문지훈-인천역사 공부하며 근대건축물 재현--평범한 시민의 애틋한 향토애

by 형과니 2023. 5. 24.

문지훈-인천역사 공부하며 근대건축물 재현--평범한 시민의 애틋한 향토애

仁川愛/인천의 인물

2009-04-14 14:03:27

 

목마른 역사, 종이모형으로 단비삼아

평범한 시민의 애틋한 향토애인천역사 공부하며 근대건축물 재현

 

 

한 재활치료사의 지극한 인천사랑이 화제다. 부평 B한방병원에서 환자들의 쾌유를 돕는 물리치료실 문지훈(40) 실장은 평범한 직장인이다. 하지만 퇴근 후와 주말 같은 개인 시간에는 인천의 향토사를 공부하고 개항기 근대건축물을 종이모형으로 제작하는 탐구자가 된다.

 

그는 틈날 때마다 자유공원 주변, 개항장의 흔적을 찾아 사진기 셔터를 누른다. 문씨는 인천역사자료관이나 시립박물관을 돌며 각종 향토사자료를 탐독하기도 하고 지금은 사라진 근대건축물을 종이모형으로 되살리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한다.

 

특히 근대건축물 종이모형은 그의 4학년과 6살짜리 아이가 좋아해 더욱 애착이 가는 작업이다. 5, 6년 전쯤이다. 특별한 계기나 명확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살았던 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새삼스런 각성이 밀려들며 알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누군가의 말처럼 사랑하면 알고 싶기 때문일지 모른다.

 

중구 송월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는 나름대로 인천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강하게 지니고 있어요. 더욱이 부모님의 삶과 나의 성장기가 뒤섞인 연민도 짙게 배어있다 보니 인천을 더욱 알고 싶고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 돼요.”

 

그는 중학교 시절 취미로 종이모형에 심취, 탱크와 같은 군사무기를 재미삼아 만들었다. 성인이 된 후 향토사 자료를 얻기 위해 들른 역사자료관에서 한 관계자가 사라지고 없는 근대건축물을 모형으로 만들어보라고 제안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인천기상대 창고가 모형으로 다시 탄생했다. 이어 대불호텔도 새로 지어졌다. 지금까지 개인적인 호기심 차원에서 만들었지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보니 제작 기간이 짧고 보관이 쉬우며 보기 가장 좋은 크기인 1:150 비율로 제작했지요.

 

작업을 하면서 알았는데 저처럼 근대건축물을 종이모형으로 만드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희소성도 있고 무척 재미있답니다.”

 

지난해 10월에는 역사자료관의 주선으로 몇 년에 걸쳐 만들어온 11점이 세상 빛을 처음 봤다. 역사자료관 사진으로 보는 인천개항장 풍경행사의 하나로 만들어진 코너였는데 방문자들의 반응이 썩 좋았다고 한다. 시의원과 시 관계자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 인연으로 시립박물관을 통해 부산까지 원정 전시를 다녀왔다.

 

지역 향토사 공부에 푹 빠진 문지훈 실장이 제작중인 홈링거양행 건물을 들어보이고 있다. 현재는 1점을 보탠 12점이 제물포구락부 한 켠에 상설전시된 상태다. 이곳에서 존스턴 별장(인천각), 각국 영사관 등 앙증맞게 재현된 역사의 흔적을 항상 만날 수 있다.

 

실물이 없으니 빈약하나마 옛날 흑백사진만으로 인천의 근대건축물을 알게 되는데 종이모형 덕분에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역사의 흔적을 피부로 느낄 수 있거든요. 죽은 역사가 현재화되는 순간이지요. 저 자신의 성취감도 크지만 인천시민을 위한 교육이나 작품 감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본업을 겸하다보니 한 작품을 만드는데 1~2달 정도 걸린다. 책자와 엽서 등 관련 자료수집과 제작구상 기간까지 포함하면 수 주가 더 필요하게 된다. 당시 실제 건물의 구조와 질감, 색깔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재료를 선택하지만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작가의 상상과 창의력으로 마감한다.

 

현재 그는 18번째 작품으로 홈링거양행 건물을 만들고 있으며 전시되지 못한 여섯 작품은 종이상자에 넣어져 집에 보관하고 있다. 종이모형으로 거듭난 인천근대건축물은 우선 문씨의 마음이 가고 정이 가는 순서로 정해졌다. 앞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양관인 세창양행 사택과 사업가이자 통역관이었던 오례당의 저택, 알렌별장을 만들어보고 싶지만 워낙 자료가 없어상태를 짐작키 어려운 점이 한계다.

 

60년대 인천의 골목길 풍경과 한국전쟁 시 풍경을 디오라마(상황연출) 형태로 되살리고 싶은 꿈도 있다. 부모세대의 삶과 본인의 성장기를 추억하며. 인천을 공부하다보니 자료가 너무 없더라고요. 진짜 목마르다는 기분을 느꼈지요. 그런 면에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몇몇 분들은 정말 저에게 스승과 같은 분들입니다. 분들이 자료도 주시고 아이디어도 주시거든요. 그리고 젊은이들의 관심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함께 공부하며 창작도 하고 싶거든요.”

 

문씨는 지금까지의 공부와 취미를 잔잔히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뜻하지 않게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따뜻한 격려가 있어 고맙지만 직업을 달리 갖는다거나 나서서 활동할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