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강화적석사
인천의관광/인천가볼만한곳
2009-04-21 03:01:56
정상에 품은 마른 연못엔 신비한 전설이
(15)강화적석사
#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
마식령산맥 줄기 끝자락에 섬 강화가 있다. 지금부터 2만년 전의 빙기에는 해수면이 현재보다 100~120m 정도 낮았기 때문에 평균 수심이 44m인 황해는 모두 육지였으며 강화도는 육지와 연결돼 있었고 주변 지역보다 높은 산지였다. 이 시기의 강화는 김포반도와 연결된 육지였으나 빙하가 끝난 후빙기에 해수면이 점차 상승하기 시작해 그 여파로 육지와의 인연이 끊어지게 됐다
강화는 섬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답사를 하면서 그 안을 살펴보면 섬이라는 느낌보다는 육지의 어느 한 곳에 와있다는 느낌이 든다. 넓은 평지도 그러할 뿐더러 낙조봉(343m), 고려산(436m), 마니산(468m) 등 구릉성 산지도 많기 때문이다. 실로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으로서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강화도는 한양에 국란이 있을 때에는 최후의 보루로, 외적이 침입해 올 때에는 최첨두의 격전지로, 오랜 기간 문화 전파의 교두보로 이용됐던 역사적인 섬이다. 또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고인돌 등 많은 유적을 담고 있는 섬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강화도를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도로를 따라 강화도를 여행하며 흔히 볼 수 있는 진지나 포대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개항을 이야기한다. 또 전등사, 백련사 등 많은 절을 보면서 그 절에 얽힌 전설과 사하촌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고인돌을 보면서 고대인들의 삶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해안가에 펼쳐진 평야를 보면서 필요에 의해 간척된 사연이나 동답을 만들어 염분을 빼던 사람들의 노고와 쌓아 놓은 둑이 무너지면서 있었던 강화의 숨은 이야기들을 한다. 이처럼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는 그 어느 박물관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는 훌륭한 곳이다.
# 적석사의 낙조대와 억새
기체험의 장소로도 이름이 있는 혈구산 주변에 고려산이 있다. 고려산의 이름은 원래 ‘오련산’이었는데 개성에 있는 고려산의 이름을 가져와 바꾼 것이다. 내가저수지 주변의 산을 보면 정상에 작은 절이 하나 있는데 이 절이 바로 적석사다. 연개소문이 태어나고 공주가 피난 왔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적석사는, 416년 고구려 장수왕 때 인도의 어느 스님에 의해 창건됐다고 한다.
스님이 절터를 찾아다니시다가 노인이 알려준 대로 고려산에 올라 물이 고여 있는 곳에 적색, 황색, 청색, 백색, 흑색의 다섯 송이 연꽃을 발견했고 이 연꽃을 허공에 던져 그 연꽃들이 떨어진 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적련사, 황련사, 청련사, 백련사, 흑련사의 절을 지었는데 그 중에 적련사를 적석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현재 고려산 정상에 사방 4m, 깊이 1m의 물이 없는 못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오련지의 가장 유력한 터로 알려져 있다. 다섯 송이의 연꽃은 음양오행에 해당하는 색깔이다. 적, 황, 청, 백, 흑색의 다섯 송이 연꽃은 음양오행에서 이야기하는 다섯 가지의 색을 말하는 것이고, 그곳에 기운이 있으니 절을 지은 것이다. 음양오행은 우리나라에 일찍부터 자리 잡고 있던 사상으로, 우리들의 생활에 속속들이 들어와 있는 사유의 방식이다.
고려산 적석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고려산 쪽으로 가는 등산로에는 산 정상 부근에 몇 군데의 고인돌을 볼 수 있다. 고려굿당 쪽으로 가는 길에는 옹달샘이 있고 그 주변에 고인돌 46호가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고려산 정상에는 과거에 습지나 기타 지하수에 의한 물웅덩이가 존재했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 물의 양이 줄었고 연꽃이 피어있던 오련지에는 물이 사라지고 없다.
적석사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면 강화팔경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는 낙조대가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서 석모도 쪽을 바라보고 있으면 주변 경관이 무척 좋아 무엇인가에 눌렸던 마음이 풀리는 듯하고 그 동안 못했던 숙제를 마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낙조대를 지나 바로 이어지는 평탄면은 인천 근교에서는 가장 훌륭한 억새밭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억새밭을 지나 고려산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다시 또 몇 개의 고인돌을 볼 수 있고 몇 번을 올라갔다 내려오면 진달래 밭이 펼쳐진다. 봄철에 진달래 꽃을 볼 수 있는 곳은 몇군데 있는데 진달래 꽃의 장관은 이곳을 빼 놓을 수 없다. 고려산 진달래를 보고 후회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 가히 짐작할만 하다. 올해는 지난 11일부터 20일까지 진달래 축제가 열려 봄 분위기를 한껏 달구었다.
장양기·연수여자고등학교 교사
# 간척의 역사를 보여주는 강화
강화도 북쪽에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조강이 흐르고 있는데 이 조강의 한 줄기는 염하로 빠져나가고 다른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강화만에서 예성강과 합류해 경기만으로 유입한다. 현재 연미정 방향으로의 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연미정은 조강과 염하의 유로를 조망하기에 좋은 곳이다.
1750년경의 강화도 지도를 보면 강화읍과 덕정산이 있는 지역과 마니산이 있는 지역은 갯골이 지나가는 두 개의 섬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부근리 고인돌이 있는 지역은 양쪽이 해안으로 이어지고 허리가 잘록한 육지의 한 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의 섬을 살펴보면 마치 사람의 손가락을 폈을 때의 모양처럼 들쭉날쭉해 인간이 거주하기에 그리 쉬운 곳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모양의 섬에 가릉둑과 선두포둑을 건설해 지금의 강화도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이다.
강화도의 간척 사업은 고려 말에 시작됐다. 1232년(고려 원종 11년),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 천도를 단행한다. 삼남 지방의 조운은 몽고의 약탈로 원활하지 않게 되고 13세기 초부터 왜구의 침입으로 강화의 식량 사정이 나쁘게 됐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해안 저지대의 간척을 고려하고 망월포의 만리장성둑을 축조하게 된다.
이러한 간척은 후에 민관에 의해 행해지게 되는데 적성둑, 삼간포둑, 가리둑, 망월둑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이렇게 둑을 만들어 평지를 만들고 주변의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많은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관개를 하는 방법은 소하천하구의 둑을 만들어 저수하는 방법, 계곡을 이루는 지역에 저수지를 만드는 방법 등 다양했다. 내가저수지라고 불리는 고려저수지도 이러한 저수의 기능을 하는 인공저수지 중의 하나이다.
강화도의 해안선이 비교적 단조로운 것은 한강, 임진강 등에서 공급되는 많은 퇴적물이 서해로 공급됨과 아울러 심한 조차로 인해 넓은 간석지를 형성하고 강화도 주민들의 부단한 간척의 결과로 여러 섬들이 연결돼 복잡하던 해안선이 단순화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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