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다 배꼽이 커서야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9-05-04 18:50:07
배보다 배꼽이 커서야
김 양수(문학평론가)
가정에서 생활예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친상을 당해 가까운 친구 한 사람이 문상을 가 돌아가신 분 영정 앞에 큰 절을 올리고 나서 상주에게 건넬 말을 몰라 문득 한다는 말이 ‘요즘 재미가 어떤가?’했다는 것이다. 상주 역시 유사한 처지인지라 ‘뭐, 보통이지’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애통하신가?’라고 물으면 될 것을 ‘재미가 어떤가?’하고 묻는 사람이나 그 같은 뚱딴지 물음에 ‘뭐, 보통이지’하고 응대한 상주나 피장파장이겠으나 가정예법이 무너진 세대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광복 전에 보았던 일 중에 재래식 화장실에서 문을 닫지 않은 채 큰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걸친 영감이 근엄한 표정을 짓고 구부려 앉아 용변을 보고있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급했으면 그랬을까 싶으면서도 용변하는 곳에까지 큰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걸치고 가서 근엄한 표정을 짓고있는 장면이 너무도 어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색한 풍경 중에 또 하나는 큰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걸친 영감 한 분이 두루마기 아랫 부분을 허리에 매고서 자전거를 타고가는 모습이었다. 꼴불견이기도 했으나 어딘지 유머러스하기도 하고 한편은 애교스럽기까지 했다.
그보다 더 꼴불견은 6·25 직후의 일로 몹시 어려운 시절이기도 했으나 인천시내 관·송학동 일부 귀퉁이에 기식하고 있던 양색시들의 풍모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인데 머리는 노랑물을 들인 파마에 얼굴은 화장을 하지않은 채 맨살 등허리가 드러나 보이는 짧은 한복저고리 바람에 고름도 매지 않고 아래엔 청바지를 걸치고 맨발에 고무신짝을 끌면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국적 불명의 가관을 드러내고 버젓이 돌아다닐 수 있었던 시절이 민족수난의 전쟁을 겪고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던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간혹 정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기게 마련인 것은 정한 이치일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를 정상 사회로 보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이긴 하지만 비교적 정상에 가까운 사회를 살아간다고 생각되는 처지에서도 이따금 저것은 좀 지나친 일이 아닌가 하는 일이 발견되는 경우와 어쩌다 맞닥드리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의도는 사실 잘해보겠다는 취지에서 발동이 걸린 것인데 뜻하지 않게 그것이 과하다 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예로서 가친이 한약방을 하면서 번 돈으로 대학을 나와 성공한 한 젊은이가 부모에게 효도하고자 가친 한약방 한약재료를 써는 작두가 평소 너무 힘들어 보였던지라 자동전기작두를 구입해드렸다. 그런데 그 전기작두는 모든 재료를 간편하게 써는 장치로 돼 있기는 했으나 한약재 썰어내는 데 사용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금속재료 자르는 용도에 더 합당한 것이어서 한약재용으로는 과한 것이었다.
크기부터가 한약재 작두는 약실 한 귀퉁이에 놓아두고 언제나 사용하기가 편리한 것인데 철판절단기는 일반승용차 크기의 절반도 넘는 것이어서 객실 한가운데를 차지했다. 그래서 평상시 손님들이 대기하고 앉아 있을 객실 한가운데를 차지해 손님들이 이구석 저구석으로 갈려 앉는 불편을 겪다 도중에 그냥 가버리고 마는 일이 자주 생기고 결국 얼마 안 가 약지으러 오는 손님발이 끊겨버리는 불상사를 초래하고 말았다. 부친을 돕고자 효도를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불효가 되고 만 것이다. 이같이 잘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행한 것도 과하다 보면 반대현상을 빚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번 숭례문 화재로 문화재 국보 제1호가 소실된 것을 계기로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긴 하지만 문화재 보호에 관한 경각심을 일깨워 갖게 된 일은 환영할 일이라고 본다. 그것을 계기로 우리 문화재위원들과 소방관 일행이 인천시내와 강화 일대에 산재한 문화재 방재시설 점검을 다녀오게 한 것은 시 당국이 참 잘한 일이라고 본다. 또한 화재위험성을 미리 대비하는 시설 마련에 착수하고 있는 계획도 호응할 일이다.
그렇지만 방재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아직 문화재 지정이 안 된 신축복원한 인천도호부청사 지역에다 과도한 방재시설을 설치하려는 계획에는 의문을 갖게 된다. 거대한 CCTV, 불꽃 신호장치, 수막시설, 물총펌프 등의 예비 방재시설들이 몇억대의 예산을 쏟아부어가며 갖추어야 하는 것인지 심도있는 숙고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문화재인 도호부청사라고 할지라도 그렇게까지 과도한 방재시설은 필요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본건물보다 더 눈에 거슬리는 방재시설 때문에 주객이 전도될 수도 있다. 배보다 배꼽이 커서야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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