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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추탕과 추어탕의 차이

by 형과니 2023. 5. 25.

추탕과 추어탕의 차이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9-05-04 18:48:18

 

추탕과 추어탕의 차이

김 양수 (문학평론가)

 

6·25난리를 치르는 피난생활 중에 식량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루끼니를 제대로 이어가기 급급하던 때인데 보리쌀에 수수조를 잔뜩 섞어먹는 어려움 속에서 난데없이 고깃국을 끓여왔다는 말에 반색을 하고 한대접 거뜬히 먹어치우고 나서 한사발 더 먹을 수 있겠느냐고 청하니 듬뿍 더 떠주어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어치웠다는 어느 작가의 회고담을 오래전에 읽은 일이 있다.

 

문제는 그 작가의 글의 그 다음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고깃국을 끓였다는 솥뚜껑을 제치고 솥 안을 들여다 보니 멀겋게 끓여진 국물 가운데에 낡은 군화 한 짝이 잠겨 있더라는 것이다. 고깃국이라고 하는 것의 정체가 결국은 낡은 군화국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주리고 있었던 때라서 고깃국이라는 말만 믿고서 고깃국이려니 하고 낡은 군화국을 속아서 먹었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할 때 같으면 고깃국이 왜 이렇게 형편없느냐고 맛을 감지해냈을 터인데 너무 굶주리고 있었던 터라 고깃국이라는 말에만 급급했던 데서 온 것이다.

 

비정상 상태에 처해 있을 때에는 정신적 영향력이 감각기능을 좌우하는 좋은 예인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일상생활에서는 감별력이 정상 유지돼 고깃국과 낡은 군화국의 차이를 알아내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이다. 바로 이 정상 미각기능이 인간 식성을 전개시켜 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음식의 맛을 감지해 내는 일이 생명유지와 큰 관련이 있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고장에는 언제나 그 고장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 고장 인천에도 옛날에는 이름난 향토음식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추탕>이었다. 요즘, 말하는 <추어탕>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원래, 인천과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추탕>이라고 했지 <추어탕>이라고 하지 않았다. <추어탕>이라고 하는 말은 6·25난리를 겪은 이후 남쪽 지방에서 옮겨온 말로 남쪽 지방 사투리가 우리 고장 본래의 <추탕>이라는 말을 밀어내고 침탈해 들어온 말인 것이다. 사실은 <미꾸라지()>이라는 뜻이니 만치 이미 고기 어()변에 가을 추()가 어울렸으니까 거기에 또 고기 어를 이어서 <추어탕>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역전(驛前)앞이라는 이중표현이 되므로 <추탕>이라고 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추탕><추어탕>에는 한가지 다른 점이 있기는 하다. <추탕>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끓인 탕인데 견주어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끓인 탕이라는 점이 다르다. 아마도 남쪽에서는 더운 지역이라서 미꾸라지가 쉽게 상해버리기 때문에 갈아서 탕을 끓이는 듯하다. 그러나 인천을 비롯해 수도권 지역에서는 미꾸라지를 통째로 탕을 끓이는 것이 정식 <추탕>인 것이다.

 

용동 골목 안에 있었던 <용동추탕집>이 원조로서 이 집의 추탕솜씨를 그대로 서울 <용금옥 추탕집> 또 동대문밖 신설동 <형제주점 추탕집>들이 배워간 것이라고 인천 미식(美食)계의 원로이셨던 고() 신태범 박사님이 저서에 기록해 놓으시고 있다. 6·25 이후 60년대 중반까지도 <용동추탕집><답동관 추탕>, <신선관 추탕>이 시민들의 향토식으로서의 명성을 유지해 나갔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 손꼽히던 추탕들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낯선 발음의 <추어탕>이라고 하는 것이 횡행하기 시작했고 <추탕>을 즐기던 세대들도 모두 저세상 분들이 되고 말았다.

 

인천 초창기 언론계의 원로이셨던 고 일 선생을 위시해 인천언론계의 전설적 인물 김응태 선생, <주간 인천> 주간이었던 권성오 선생, 인천시립박물관을 개관해 초대관장을 역임하시고 뒤에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내신 이경성 교수님, 그리고 인천에서 시인으로 출발해 경희대 교수를 지내시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하신 조병화 선생, 또한 컬럼비아대학을 나오시고 한양대 영문학 교수로 활약하신 이순복 교수님 등이 늘 답동관 추탕집과 용동 추탕집의 단골손님으로 거나하게 취하신 모습으로 고담준론을 펴시던 그 호기와 목소리를 이제는 영영 들을 수 없게 돼 적막강산에 서있는 느낌이 이따금 들곤 한다.

 

지난번 TV를 통해 보니 <추어탕>이 국산 양식미꾸라지만으로는 충당할 수가 없어서 엄청난 양을 중국산으로 메우고 있는데 그나마 미꾸라지는 극소량만 가미하고 꽁치니 고등어니 하는 미꾸라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엉터리 해물들을 종합해 <추어탕>이라고 팔고 있다는 것이다. <추탕>맛 터줏대감들이 세상 살아계시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