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인천 밴댕이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05-08 11:21:54
‘바다의 銀魚’ 목구멍에 봄날 온 듯
(17) 인천 밴댕이
“5월에 잡히는 밴댕이는 밴댕이가 아니라 바다의 은어(銀魚)다. 연하고 기름져서 버터를 씹는 것 같다. 물론 회라야 하고, 상추쌈에 곁들이면 더욱 별미다. 소금을 뿌려 구워서 꼬리를 쥐고 더운밥에 살을 훑어 얹어서 먹는 맛도 기가 막히다.”
의사이면서 향토사가요, 또한 미식가로 유명했던 고 신태범 박사가 생전에 펴낸 저서 ‘먹는 재미 사는 재미’에 인천 밴댕이에 대해 적은 글이다. 실제로 밴댕이 맛을 보듯 생생하고 맛깔스런 표현이 정말 미식가답다.
지나치게 쇼비니즘에 사로잡혔다고 할지 모르나 밴댕이는 우리 인천이 으뜸이었다. 인천, 강화 연해에서 잡히는 밴댕이는 참으로 기름져서 신 박사의 표현 그대로 생선 맛이 아니라 버터 맛이었다. 어찌나 고소한지 ‘목구멍에도 봄날이 온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인천의 해산물은 어종도 매우 다양하고 맛도 아주 뛰어났다. 이른 봄부터 식탁에 오르기 시작하는 조개류, 4월에 만나는 대표 어종, 조기와 전어, 주꾸미, 그리고 5월에 들어서면 ‘세계에서 가장 맛이 좋은’ 인천 꽃게와 밴댕이가 온 시가에 넘쳐났다.
오늘날 어획량으로 보면 조기나 꽃게는 다 전설이 되고 만 느낌이고 밴댕이 역시 부쩍 고갈되어 가는 모양이지만, 아직은 하인천역 건너 청관 길 초입의 ‘수원집’을 비롯해 몇 점포와 연안부두 일대, 그리고 구월동 문화회관 건너 밴댕이 골목에서 맛을 볼 수 있다.
수원집은 밴댕이 외골 46년으로 현존하는 인천 최고(最古)의 노포(老鋪)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인천부두가 하인천역 뒤에 있을 때부터 영업을 시작한 집이다. 그것이 연륜이겠지만, 주인 부부의 밴댕이를 써는 날렵하고 정교한 솜씨는 가히 명장(名匠) 칭호를 주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연안부두나 문화회관 앞 밴댕이 골목 등과 수원집은 밴댕이를 써는 방법에서 차이가 난다. 앞의 두 곳에서는 밴댕이를 뼈 없이 세로로 길게 썰어 내는데, 수원집에서는 뼈째 가로로 토막토막 썰어낸다. 그것이 반 세기를 지켜온 수원집의 전통인 셈이다.
세로로 썬 것은 부드러우나 어딘가 좀 밋밋하고, 가로로 썬 것은 다소 껄껄한 대로 씹히는 맛이 있다. 물론 이 두 가지가 다 회로 먹는 경우를 말하는 것인데, 신 박사의 기술대로 상추쌈을 쌀 때는 역시 뼈 있는, 가로로 썬 것이 훨씬 씹히는 맛을 느끼게 한다.
수원집은 오랫 동안 주머니가 헐한 인천의 문인, 화가들에게 밴댕이의 고소한 맛과 더불어 필수 영양분을 공급해 왔다. 그 때문에 이 점포나 밴댕이들 모두 지난 날 인천의 문화, 예술 발전에 간접적으로나마 공헌한 갸륵한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천의 5월은 꽃게와 밴댕이, 대하, 황세기 등이 풍요한 밥상을 꾸며 주었다. 전쟁 후 어려운 시절에도 인천에서는 식구대로 몇 마리씩은 돌아갈 만큼 구운 밴댕이가 밥상에 오르곤 했다. 어제 모처럼 그런저런 생각에 잠겨 밴댕이회를 먹었다. 밴댕이는 순 인천 어물이고, 인천의 상징이라는 억지 생각도 혼자 해 보았다.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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