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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기지개를 펴는 문학산

by 형과니 2023. 5. 26.

기지개를 펴는 문학산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9-05-13 21:02:38


 기지개를 펴는 문학산 

개항 후 인천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 영국 성공회도 들어와 교회를 세우고 자리잡았으나 일부는 강화로 가서 느긋하게 자리잡고 교세를 확장해갔다. 그 무렵 우리나라가 일본의 침략에 의해 나라를 강점당하고 서양교회도 감시, 간섭의 손이 뻗치자 귀찮은 눈초리에 덜 시달리는 섬지역 강화가 교회활동에 아무래도 편했던 것이고 그곳 산모습이 자기네 스코틀랜드의 산 모습과 닮아있어 향수를 달래는 심정에서도 강화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라고 <교회사>를 연구하는 박철호 형이 내게 들려줬다.


우리 전래의 노래에도 고향산천을 읊조린 가사가 있듯이 사람들은 고향을 떠올릴 때 그 고장의 산이 상징이 되고 있다. 북방족인 여진족 말로 <산>은 <아린> 또는 <아리라>라고 한다는데 한국말이나 여진족 말, 퉁구스 말, 터키 말은 알타이어족의 말로 형제말들이며 여진말의 <아린>은 터키말의 <아리 알린 아리라>, 퉁구스 말의 <아리라>와 뜻이 같으며 아리랑이라는 노래의 표현은 고려시대 이래 한반도에 귀화해 살았던 거란족, 여진족이 그들이 떠나 살아야 했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망향의 노래였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시베리아 남부지방에서 쓰이는 아리랑과 쓰리랑이라는 말이 고대 북방 샤머니즘에서 영혼을 맞이하고 그 이별의 슬픔을 참는다는 뜻이라는 발표가 시베리아 소수 민족촌에서 열린 학술발표에서 있었다고 이규태 칼럼은 기술해 놓고 있다.

아리랑이 고향을 그리는 향수의 노래이고 내고장의 산을 뜻하는 이름에서 온 것이기에 떠나 살아야 하는 아쉬움의 이탈감에서 오는 애수와 이탈에 수반된 몸부림의 탄식이 애수로 부풀어 아리랑의 가락으로 불리워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어느 고장이고 그 고장을 상징하는 주산(진산)은 대개 있기 마련이다. 수도 서울에는 삼각산과 남산이 있고 부산에는 금정산이 있으며 대구에는 팔공산이 있고 전라도 광주에는 무등산이 있는가 하면 대전에는 계룡산지맥의 계족산이 있고 충북 청주에는 속리산이 있다. 우리 고장 인천에는 북서쪽으로 계양산이 있는가 하면 남동쪽으로 원인천지역의 주산인 문학산이 있다. 그래서 원인천지역의 문학산이 인천지방문화재 제1호로 지정이 됐고 산세가 더 크고 높은 계양산이 인천에 합류해 문화재 제2호로 지정이 됐다.

계양산이 인천의 북변을 수호하는 큰 장벽구실을 하고 있다면 문학산은 나라를 지켜온 발자취를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문학산은 모름지기 신석기시대와 청동기 고인돌 문화시대에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흔적이 문학 지석묘와 돌칼, 돌살촉, 돌도끼의 출토로 입증이 되고 있으며 또한 삼국시대 초 고구려시조 동명왕의 아들 비류가 미추홀 개국의 터전을 닦은 고장으로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문학산 정상 못 미쳐에 토성터와 그 아래에 석성, 동문과 우물터, 임진왜란 때 석성을 다시 견고히 수축하고 왜군을 막아 물리친 김민선 부사의 사당인 안관당지와 학산 서원터 등 유서깊은 역사문화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는데 1959년 최신병기를갖춘 군사기지가 들어서면서 군기지로 터전을 닦으면서 토성, 우물터 안관단지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58년도에만 하더라도 당시 인천시가 동문을 중심으로 성벽의 일부를 개수했고 이어 안관당 등 사적을 정비하려던 중이었는데 다음 해에 군사기지가 들어선 경황 때문에 중단이 된 것이다. 인천의 진산인 문학산이 군사시설로 해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올라가 볼 수 없게 된 것은 서운한 일이었으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민족통일 전쟁이라는 미명 아래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대한민국 영토로 불법 남침해 와서 3개월여 남한 국민들을 생지옥으로 몰아넣었던 북쪽 공산군의 만행을 숨막히게 겪은 사람들은 국방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사시설이 들어선 것을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문학산의 옛 별칭은 배꼽산으로 산 중턱 정상에 배꼽처럼 보이는 봉화대가 있기 때문이었다. 봉화대란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 봉화불로 알리는 신호대인 것이다. 군사시설이 들어선 후 봉화대가 없어져 애석한 일이었지만 <나라를 지켜오던 봉화대는 없어졌으나 최신병기가 그 자리에 앉아 수호하고 있으니 문학산은 예나 지금이나 믿음직한 인천의 주산이다.>라고 원로이신 고(故) 신태범 박사는 저서에서 지적했다. 예전에는 봉화대로 나라의 지킴이 구실을 해왔고 지금은 최신병기가 나라의 지킴이가 돼 있으니 문학산은 역시 나라를 지키는 주산이라고 하신 것이다. 북한 핵 문제가 들썩거리고 있는 한 지킴이의 구실을 접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다만 그렇더라도 훼손된 나머지 석성 일부와 등산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4년 전 모 지역일간지 시평란에 언급한 일이 있었는데 최근 드디어 석성 수축과 함께 등산로 정비작업을 인천시가 착수한다는 낭보가 들린다. 시민들은 박수로써 환호하면서 기대에 벅찬 숨을 고르며 지켜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