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위기에 처한 근대문화유산
인천의문화/인천의문화재
2009-06-15 16:04:59
철거위기에 처한 근대문화유산
근대건축물에 대한 인식이 해가 다르게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청산 대상이자 철거 대상이다. 2001년에 도입된 등록문화재 제도 시행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철거작업은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인천에서도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던 강화양조장이 지난 2월에 철거되었으며, 철거 위기에 처한 제물포고등학교 강당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기까지 여러 가지 곡절을 거쳐야 했다. 또한 국가 지정문화재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보존가치가 높은 근대건축물이 소유자의 반대로 등록문화재 지정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대문화유산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존·활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천에서조차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다른 지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할 수 있다. 더욱 절박한 문제는 근대문화유산 보호의 근간을 흔드는 시도로, 민주당 장세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문화재 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바로 그것이다. 2009년 1월22일 장의원은 '일제강점기 식민지배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군사시설, 일본인 지주 주택 등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보호를 받고 있으며, 이는 일제의 문물을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인정하는 것으로 우리의 문화적 긍지와 자존심을 훼손한다'는 명목으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개정안에 따르면 일제 수탈에 사용된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는 심의를 거쳐 '역사적 보존자료'가 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역사적 보존자료에 대한 기록의 작성·보존이나 수리 및 관리에 필요한 경비보조 등 보전에 필요한 지원이 가능하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개정안이 발효됨으로써 가장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문화재 현상 변경에 대한 부분이다.
내부는 임의 변경이 가능하고 외관도 ¼ 미만에서 변경하는 경우에는 신고 없이 임의대로 시행할 수 있으며, 보호구역 경계로부터 일정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건축 행위에 대한 제한도 없는 등록문화재의 경우에는 이 법안이 발효되어도 현재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그렇지만 등록문화재보다 보존가치가 높은 국가나 시·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근대건축물의 경우에는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즉, 인천중동우체국이나 구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 바로 옆에 고층 건물을 세워도 문화재보호법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하게 된다는 말이다.
상당수의 근대문화유산이 도심지에 위치하고 있어 재개발의 걸림돌로 인식되는 마당에 이 법안대로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된다면 대부분의 근대건축물은 상당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일제와 관련된 근대건축물에 '문화재'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자는 취지의 개정안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말이 곧이들리지는 않는다. 또한 침탈이 문제라면 일제가 남긴 유산만이 청산 대상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침탈했거나,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모든 유산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민족에게 아픔이나 상처를 주었다는 이유로 문화유산을 가위질한다면, 많은 수의 문화재는 훼절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근대건축물은 우리나라 근대사를 짓누르고 있는 일제강점 및 6·25전쟁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이를 시대의 논리만으로 철거해버린다면 근대는 흔적조차 사라지고 말 것이다. 도시는 공간과 시간의 켜(layer)가 중첩되어 존재할 때 역사문화도시가 되고, 건축물에는 당대의 문화가 함축적으로 표현된 상징물이라는데 문화적 가치가 있다.
문화선진국으로 지칭되는 국가에서는 치욕의 역사가 서린 현장이나 흔적을 네거티브 문화유산으로 보존하여 후세들의 역사 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치욕의 상징을 없앤다고 그 치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에 대한 욕구가 늘어가고 역사에 대한 관심이 심화되는 마당에 근대의 흔적을 단지 지워야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안타깝다.
/손장원 재능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