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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문화/인천학강좌

정진석 교수, 장지연 '친일' 규정 비판

by 형과니 2023. 5. 28.

정진석 교수, 장지연 '친일' 규정 비판

인천의문화/인천학강좌

2009-06-23 21:49:53

 

"순종.영친왕의 친일부터 따져라"

정진석 교수, 장지연 '친일' 규정 비판

 

 

"일황(日皇)을 만나러 일본을 방문한 사람은 순종이고, 일본 육사를 졸업한 사람은 영친왕이었다. 군주의 일본 방문과 영친왕이 육사를 졸업하여 장차 일본군의 장군으로 승진하는 상황이면 그들의 친일이야말로 문제 삼을 부분이다.

 

유학적 사상을 지닌 장지연이 군주의 행동을 비판하지 않았다 해서 이전의 항일과 국학분야의 업적을 모두 친일로 매도한다면 시대상황을 완전히 도외시한 주장이다."

 

언론사가인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19161210일자 2면에 실린 '환영 하세가와 총독'이라는 제목의 한시, 순종과 일황의 만남을 소재로 한 '일본과 조선의 융화'라는 글, 순종이 1917년 이복동생 영친왕의 일본 육사 졸업식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할 때 매일신보에 실은 한시 등을 근거로 그 작가인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1864-1921)을 일방적으로 '친일파'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반박한다.

 

정 교수는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규탄한 위암의 황성신문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게재 100주년을 기념해 위암장지연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제11회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위암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친일 청산운동을 비판했다.

 

정 교수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군주와 왕가의 행적을 일제의 강압에 따른 불가피한 행동으로 보고 문제삼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매일신보에 장지연이 글을 쓴 것도 집요한 압력을 받은 결과였다"고 반박했다.

 

나아가 정 교수는 "한 인물의 공과 과를 아울러 평가하지 않고 작은 흠을 잡아 '친일'로 몰아붙이고 그의 업적을 모두 매장하려 드는 편파성""역사의 또 다른 왜곡이며, 허무주의밖에 남을 것이 없다"면서 친일파 연구의 선구자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고 임종국 씨가 위암을 "언론생활을 통해 불굴의 기자혼"을 발휘했으며 "자주.자립.자강으로 대중을 계몽하면서 애국애족"한 인물로 평가했음을 상기시켰다.

 

정 교수는 19111029일자 경남일보에 실린 천장절(天長節.일황 생일)을 축하하는 한시 저자가 위암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전혀 뒷받침되지 않으며, 당시 정황을 볼 때 그 작가가 위암일 가능성은 적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에 의하면 연해주에서 귀국해 경남일보에 관여한 위암은 이 신문에 마련된 '사조'(詞藻)라는 고정란에 글을 기고할 때는 숭양산인(崇陽山人)이라는 필명을 밝히곤 했으나, 문제의 천장절 축시에는 그런 흔적이 없다.

 

한일병합 이후 장지연이 '변절'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하더라도 장지연이 적극적인 친일로 나아갔던 것은 아니며 더욱 유교에 매달렸고, 문명화를 위해 유교의 개선과 진흥을 강조했다"면서 "이는 장지연이 지닌 사상적 한계"였지 그것 때문에 그를 일방적으로 친일파로 규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