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과 여운형의 ‘親日’
인천의문화/인천학강좌
2009-06-23 21:50:44
[시론] 장지연과 여운형의 ‘親日’
정진석[전 한국외대교수, 언론사]
위암 장지연 선생이 을사늑약(乙巳勒約)을 반대하는 명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날에 목놓아 통곡하노라)’을 쓰고 투옥된 지 100주년이 지난 20일이었다. 하지만 100주년을 기념하여 계획되었던 사업은 무산되고, 예년보다 오히려 간소한 행사로 허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최근 불거진 ‘친일(親日)’ 논란의 후유증 때문이다. 이 날을 전후하여 해마다 개최하던 세미나와 언론상 시상식에 한국언론재단은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언론상 심사에 참여해 왔던 언론재단이 어디서 무슨 압력이라도 받았는지,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스스로 내린 결정인지는 알 수 없다. 관례를 깨고 행사를 외면한 것은 언론재단이 성급하게 장지연의 친일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비칠 수도 있다.
장지연은 친일파인가? 친일파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원조(元祖) 임종국(林鍾國)의 말을 들어 보자. 그는 장지연의 언론 활동에서 불굴의 기자혼을 발견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자주·자립·자강으로 대중을 계몽하면서 애국애족하던 인물”로 요약했다. ‘시일야방성대곡’에 대해서는 이렇게 썼다. “일본의 배신과 침략을 통박하고 오적배(五賊輩)인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과 각 대신을 개돼지와 같다고 말한 그 필법(筆法)! 피눈물이 지면을 가득 채운(血漏滿紙) 신문을 집에서 집으로 전하면서 읽을(家傳而戶誦) 때에 위암은 철야 통음(痛飮)하면서 닥쳐올 사태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일경(日警)은 날이 밝기도 전에 들이닥쳐서 인쇄시설 일체를 봉인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임종국의 유지를 이어받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겠다는 목적을 내건 단체다. 그런데 임종국은 장지연을 자주·자립·자강을 지향하는 민주적·민족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했으니, 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관점과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민족 수난의 격랑에서 성장한 우리의 언론 역사에는 시대 상황에 따라 많은 명논설이 있었지만, ‘시일야방성대곡’과 같은 날짜에 실린 기사 ‘오건조약청체전말(五件條約請締顚末)’이 불러일으킨 커다란 파문을 능가하는 논설과 기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번뜩이는 일본군의 총칼 앞에 정부 대신이 혼절하거나 떨면서 도장을 찍었던 그 살벌한 상황, 하세가와(長谷川好道) 군대의 군화 소리가 장안을 누비던 공포 분위기에서 장지연은 신문을 만들어 검열받지 않은 채 뿌렸다. 일본군은 장지연을 즉시 구속하고 신문은 압수와 함께 정간 처분을 내렸으나, 목숨을 걸고 쓴 논설의 파급 효과는 일제의 총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영국인 베델(裵說·E.T.Bethell)과 양기탁(梁起鐸)이 발행하던 대한매일신보는 장지연의 논설과 을사늑약의 사실보도 기사를 황성신문에서 전재하여 한국민의 억울함을 알렸을 뿐 아니라 이를 영문과 한문으로 번역한 호외까지 발행했다. 호외는 일본에서 영국인들이 발행하던 영어신문 ‘재팬 크로니클’에 또 한 번 게재되었다. 우국적인 논설과 을사늑약의 진실은 이런 단계를 거치면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니, 어지간한 무장투쟁의 공적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국제여론을 크게 불러일으키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근년 들어 장지연의 일생에 걸친 언론 활동과 국학 연구의 업적 전체를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시대 상황을 도외시하면서 선생을 헐뜯음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팔고, 이를 부추기는 무리들이 각종 매체에 활보하고 있어 일반의 인식을 오도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안타까움 금할 길 없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친일 행적이 뚜렷한 사람의 친일엔 애써 눈을 감고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또 웬일인가.
일제가 1943년 10월 조선에서 학병(學兵) 동원을 실시한 후 ‘2500만 동포에 호소함’이라는 선동적인 글을 썼던 여운형(呂運亨)의 행적은 친일이 아니라니 형평이 크게 어긋난다. 아까운 젊은 청년들을 침략 전쟁의 총알받이가 되도록 부추겼던 글에는 면죄부를 주는 한편에서는 1910년대 묵은 신문의 귀퉁이를 뒤져서 장지연의 친일 흔적을 증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이를 신문과 방송에 퍼뜨리는 짓은 형평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친일 청산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우려되고 그 순수성에도 의구심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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