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 정체성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9-09-05 09:40:35
신음하는 정체성
시 론
문화는 재창조를 거듭하면서 변화하고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애환이 서리고 추억이 숨쉬고 시간이 묻어날수록 그 문화는 생명력을 담고 역사를 내재하며 품격을 갖추어 간다. 간혹 긍지와 자부심으로 인해 도도함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 도도함은 지역민의 자기문화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자신감의 또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문화는 척박해지기 마련인데 유감스럽게도 인천문화의 현 모습이 이렇지 않은가 싶다.
국가가 엄격하게 관리하고 규제하기 때문에 보존이 가능한 측면도 있지만 유럽에서는 수백년 된 건물에 여전히 사람이 거주한다. 세계가 유럽문화의 가치를 인정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낡은 것은 발전의 장애물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한, 게다가 국가나 정부가 여기에 앞장서는 한 살아있는 문화는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렵다. 더불어 지역문화를 인식하는 지역민들의 사고방식 또한 문화 보존과 계승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천에서 역사적으로 보존하고 계승할 수 있는 문화적 유산은 이제 별로 남아있지 않다. 지금 인천에는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국적 불명과 지역 불명의 문화가 서슬 퍼렇게 번져가며 인천문화의 정체성에 숨통을 조이고 있고 게다가 인천을 '합중시'라고까지 규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합중'이란 오합지졸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인천이 아무 규율도 통일성도 없이 무리들이 몰려있는 곳이란 말인가.
그렇게 치면 합중이 아닌 곳은 있는지 의심스러우며 그렇다면 서울은 인천보다 더 합중적인 도시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용어가 이제 공식화된 듯이 스스럼 없이 사용되고 있다. 개항 또한 인천 역사의 한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인천은 여전히 개항의 사슬에 묶인 채 식민도시라는 굴레를 써 왔으며 이 과정에서 2천년 인천의 역사는 도외시되고 외면당해 왔다.
인천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비교적 외지인들이 들어와 정착해 살아가는데 심리적으로 크게 불편하지 않는 곳이다. 본토박이가 적고 지역적 배타성이 거의 없거나 매우 약한 관계로 적응하는데 심각한 부담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특성이 지금까지 인천문화가 사장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사실이다. 인천의 고유문화는 외지인에 의해서 상당부문 지워져 온 측면이 있으며 정체 불명의 문화로 덧칠해져 왔다. 물론 여기에는 인천의 정체성과 역사문화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자조적인 행태로 일관해온 토박이들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또한 이에 못지 않게 인천을 잘 모르면서 마치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원로 행세를 일삼는 사람들로 인해 인천문화가 그 색깔을 잃어버리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그 지역에서 태어나서 살아보지 않고는 지역의 정체성와 문화적 특성을 감각해 내기 어렵다.
지역 방언이 지역문화의 토대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헌에 기록돼 있는 것만 읽고 실제로 아는 것처럼 처신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예를 들어 동인천, 하인천, 배다리 등이 살아있는 역사적인 지역으로 존속하려면 구체적인 현장들이 보존되어야 하지만 이것 역시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재 건설되고 있는 곳도 인천문화의 특성이 배제되기는 마찬가지이며 송도신도시도 이미 이 대열에 합류중이다. 도대체 전국에서 인천만큼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파손된 곳이 또 어디 있는지 아쉬울 뿐이다. 이제 인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발굴과 보존과 계승을 위해서는 진정으로 인천을 아끼고 사랑하는 토박이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인천의 진짜 원로를 찾아야 하며 인천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느끼고 몸으로 감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인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명품도시는 문화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며 문화 경쟁력의 근본은 특성과 차별성, 시간과 역사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준기 인천대 교수
종이신문정보 : 20090903일자 1판 15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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