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내항 재개발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9-09-05 09:45:19
할아버님 때부터 인천 내항에 인접한 중앙동과 송학동(현재)에서 거주하고 있는 필자는 인천의 누구보다도 내항과 인연이 깊고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구한말(舊韓末) 우리나라 최초의 군함 광제호 함장이시던 할아버님(愼順晟)과 인천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인천 발전과 향토사 집필에 남다른 열정을 지니셨던 아버님(愼兌範)의 유지에 따라 인천을 지켜오고 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시민들의 민원대상이 되어 버린 내항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답답한 심경과 함께 인천을 떠나고 싶은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홉 살이 되던 1920년대 초 여름이라고 기억된다. 아버지께서 오늘 돌아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축항으로 향했다. 제1갑문 앞에 이르러 광제호 갑판 위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아들이 축항에 나와 있는 것을 보시고 반갑기 보다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이 짙은 아버님에게 먼 절을 올리고 자랑스럽고 들뜬 기분으로 축항 안으로 들어오는 광제호를 눈여겨 지켜보았다"(愼兌範 저 '인천한세기'에서) 일제시대에도 어린 학생들까지 축항(내항) 출입이 가능했고 전국 각지에서 인천 항구 구경을 오는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개방되어 친수공간 역할을 하던 내항은 어느 때부터인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이방 지대가 되고 말았다. 더구나 공해 유발 원료(고철, 원목 등) 화물과 함께 대형 화물 트럭이 도심을 질주하는 무법천지가 된 것은 인천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었다. 중앙정부와 인천시가 야심찬 항만 재개발 사업을 구상하고 있음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개발업자의 이익보다는 공공 목적의 친수공원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면 한다. 뜻있는 시민들과 시민단체의 목소리와 참여가 절실한 시점이기도 하다. |
프랑스의 마르세유 항구는 과거 지중해와 수에즈 운하를 통해서 세계로 향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관문이었다. 그러나 화물과 원유(原油) 등은 이미 마르세유 내항이 아니라 인근 각지에 조성된 외항에서 취급되고 있고 내항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친수공간이 되었다.
대영 제국의 영화와 번영을 상징하면서 세계로 뻗어나가던 중심항구도시 리버풀의 내항은 친수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비틀즈의 고향이기도 한 리버풀을 찾는 세계 각 국의 관광객들은 과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아메리카행 이민선을 탔던 애환이 서린 항구에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일본의 대표적인 항구도시인 요코하마와 코베(神戶)도 마찬가지다. 일본 근대화의 관문이었고 오늘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교역의 주인공이었지만 내항은 시민들을 위한 친수공간으로 변모된 지 오래다. 지난달 요코하마 개항 15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를 관람하면서 인천보다도 규모가 큰 내항이 공원과 문화시설로 탈바꿈되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함께 산책하고 즐기는 것을 보고 부러움이 앞섰다. 과거 화물을 싣고 내리던 부두에는 개발 이익을 노린 고층건물이나 상업시설이 없는 것을 보고 앞서 나가는 일본의 또 다른 모습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인천 내항의 기능 조정은 시대적인 요망이자 시민사회의 숙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항의 친수 공간을 요망하는 시민들의 오랜 염원을 명분 삼아 개발업자들이 개입하여 주상복합 고층건물을 세우고 상업시설이 판을 치는 재개발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대체항구 건설로 항만 관련 경제주체들을 확실히 배려하고 개발 이익을 노리는 주상건물은 원천적으로 배제되어야 하겠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