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도호부청사(仁川都護府廳舍)
인천의문화/인천의문화재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호 (남구)
명 칭 인천도호부청사(仁川都護府廳舍)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관아
수량/면적 1동
지 정 일 1982.03.02
소 재 지 인천 남구 문학동 262 (문학초등학교내)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인천광역시교육청
관 리 자 인천광역시교육청
상 세 문 의 인천광역시 남구 문화공보실 032-880-4298
조선시대의 기본적인 지방 행정기구는 도(道)이다. 경기도의 경우, 3개의 목(牧)과 8개의 도호부(都護府), 10개 군(郡)과 12현(縣)이 있었고, 8개의 도호부 가운데 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인천이 도호부로 승격된 것은 조선 세조 5년(1459)으로 세조의 비(妃)인 자성왕후 윤씨의 외향(外鄕)이기 때문이었다.
인천도호부청사의 건축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객사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지붕의 기와에서‘강희 16년’이라는 명문(銘文)이 나온 것을 볼 때 숙종 3년(1677)에 중수된 것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인천도호부의 건물 구성은 《인천부읍지(仁川府邑誌)(1899)》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기본적인 지방 행정기구는 도(道)이다. 경기도의 경우, 3개의 목(牧)과 8개의 도호부(都護府), 10개 군(郡)과 12현(縣)이 있었고, 8개의 도호부 가운데 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인천이 도호부로 승격된 것은 조선 세조 5년(1459)으로 세조의 비(妃)인 자성왕후 윤씨의 외향(外鄕)이기 때문이었다. 인천도호부청사의 건축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객사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지붕의 기와에서‘강희 16년’이라는 명문(銘文)이 나온 것을 볼 때
숙종 3년(1677)에 중수된 것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인천도호부의 건물 구성은 《인천부읍지(仁川府邑誌)(1899)》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인천도호부에는 객사(20칸), 동헌(10칸), 내동헌 (33칸), 삼문(三門 : 3칸), 사령청(9칸), 향청(13칸), 군관청(7칸), 훈무당(4칸), 옥사(4칸), 어용고, 군기청(7칸) 등 15∼16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군관청은 광복 전까지 파출소로 사용되다가 불타 없어졌고,
내동헌은 1955년까지 인천시 문학출장소로 사용되다가 헐렸다.
그렇지만 현재는 객사의 일부와 19세기 초 건물인 동헌 그리고 연대 미상의 창고만 남아 있다. 또한 현재의 문학초등학교를 세우면서 남아있던 동헌 등의 건물을 이전, 개축하였기 때문에 당초 건물들의 배치 형태를 알 수가 없게되었다. 객사는 원래 20칸의 규모였다고 전하여지나 현재는 양쪽 익랑채가 없어지고 박공지붕으로 된 중앙부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 일부만 남아 있다.
동헌은 합각지붕의 굴도리집으로서 관청 건물로는 드물게 부연을 달지 않은 홑처마지붕을 하고 있으며 둥근기둥이 아닌 네모기둥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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