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12> 수인선 협궤열차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0-01-14 11:37:41
추억 속에 묻힌 ‘꼬마열차’
<옛 인천의 향수를 찾아서 12> 수인선 협궤열차
아쉬움과 추억을 남기고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천의 명물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것이 수인선 협궤열차다. 국내 유일의 협궤열차였던 수인선은 1937년 일제의 물자 수탈 수단으로 탄생했지만 반세기 넘게 인천~수원간을 오가며 서민들의 발이 되었다.
열차 한 량이 시내버스보다 작고 좁았지만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수인 지역 주민들에겐 더 없이 소중한 열차였다. 지난 1995년 12월 31일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에 밀려 58년 만에 운행이 중단되는 최후를 맞이하기까지 서민들의 온갖 애환을 몸으로 견뎌낸 열차다.
지금의 중구 신흥동에 옹기종기 모여 성업을 이루고 있는 기름집들도 수인선 영향으로 형성된 것이다. 구 옹진군청에서 제일제당을 지난 철로 변 못 미쳐 공터가 지난 날 수인역의 현주소다.
경기도 이천과 여주지역의 쌀을 비롯해 소래 남동 등지에서 생산되는 소금과 곡물들이 수인선을 통해 인천으로 입하했다. 새벽밥을 먹고 협궤열차를 타고 온 아낙네들의 머리에서 이고 온 다양한 종류의 짐 다발이 역 앞 공터에 풀어지면 이곳이 바로 장터가 됐다.
특히 소래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수산물과 인근 농촌에서 가꾼 각종 채소들이 시중가보다 훨씬 싼값에 거래가 이뤄져 인기를 끌었다. 직거래 장터가 점차 활성화를 이루며 차츰 길가 변에 작은 상점들이 들어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철로 변 참기름 동네다.
어느 곳이고 역전 주변에는 동네 건달들이 있듯이 수인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안산, 시흥, 소래, 남동 등지에 사는 학생들이 인천으로 통학을 했는데 이때 유일한 교통수단이 수인선이었다. 이들 통학생(일명·유학생)들 대부분이 지역 유지들의 자녀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역전에 터를 잡고 있던 건달들이 이들 유학생들을 친구(물주)로 사귀며 경제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다. 필자도 이 당시에 만난 안산과 시흥지역에 사는 친구들과 40년이 넘게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해방 후 60년대까지만 해도 증기기관차가 객차 6량과 화물차 7량을 달고 수인선 15개역을 하루 평균 7차례나 운행했다.
그러다 버스 등 대체 교통수단이 속속 등장하면서 운영이 적자로 돌자 철도청은 1979년 송도~남인천간 5.9km의 운행을 중단했다. 이어 1992년 7월에는 송도~소래역의 운행을 중단하고 1994년 9월에는 한양대 안산캠퍼스~송도역 26.9km 구간을 폐쇄, 수원~한양대역까지만 운행했다. 이 무렵에는 하루 평균 이용객이 250명에 적자가 연간 20억원에 이르자 급기야 1995년 12월 31일 이 노선마저 중단함으로써 수인선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수인선 중에서도 유명한 곳으로는 단연 소래역과 군자역이 꼽힌다. 소래역은 여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는 물론이거니와 가족과 함께 정겨운 나들이를 하기에 제격인 곳이다. 주부들이 밑반찬으로 식탁에 올릴 조개젓이나 밴댕이젓, 새우젓 등을 사기위해 소래를 찾았다. 이와 함께 군자역의 오이도(현재 옥구공원)도 많은 사람들이 놀러왔다. 필자도 고등학교 시절 여고생들과 오이도로 놀러가다 사고를 당했다. 당시 협궤열차는 힘이 달려 동양제철화학에서 송도 조개고개까지는 속도가 경보 수준 이었다.
이 틈을 타 젊은 사람들은 재미로 열차에서 내려 열차와 달리기를 하다 다시 올라타는 일을 반복했다. 경험이 없는 우리들은 열차가 조개고개를 넘어서면 빨라진다는 것을 간과해 일행 중 이기성이가 열차에 오르지 못하는 불행을 당했다. 열차와 점점 멀어지던 친구를 바라보던 나는 순간적으로 열차에서 뛰어내려 송도에서 소래를 지나 4시간 가까이 뛰다 걷다하며 군자(오이도)까지 갔다.
당시 기성이와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무밭에 주저앉아 무를 훔쳐서 먹던 그 맛을 영원이 간직한 체 기성이 와는 남달리 각별한 사이가 됐다. 이 같이 인천 사람들에게 많은 추억을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꼬마열차가 오는 2011년에 개통된다는 소식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주관, 공사가 한 참 진행 중인 도시철도와 하루 빨리 만날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남용우 객원기자 nyw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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