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즙신도비(沈楫神道碑)
인천의문화/인천의문화재
제32호 (서구)
명 칭 심즙신도비(沈楫神道碑)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금석각류/ 비
수량/면적 1기
지 정 일 1995.11.14
소 재 지 인천 서구 공촌동 산8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심재갑
관리자(관리단체) 심재갑
상 세 문 의 인천광역시 서구 문화공보실 032-560-4343
일반설명 | 전문설명
신도비는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비로, 이 비는 조선 인조 때의 문신인 심즙(1569∼1644) 선생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심즙은 28세 때인 선조 30년(1597) 과거에 급제하여 형조 ·공조 ·예조판서를 맡아보았다. 특히 이괄의 난이 일어나 왕이 공주로 처소를 옮길 때에 왕을 모시고 따라간 공이 인정되어 공신에 오르기도 하였다.
비는 사각받침돌 위에 길쭉한 직사각형의 몸돌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의 글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홍봉조가 써서 유척기가 비에 새기었다.
공의 묘는 원래 시흥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이장하였는데, 이때 비도 함께 옮겨 보존하고 있다.
심즙(1569∼1644)은 조선 인조때의 문신으로 자는 자순(字順) 호는 남애(南崖) 시호는 효간(孝簡)이다.28때인 1597년(선조 30) 문과에 급제하였고 형조, 공조, 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특히 이괄의 난 때는 인조가 공주로 이어(왕이 처소를 옮김)할 때 호종(왕을 모시고 따라감)하여 호종공신이 되었다.공의 묘는 본래 시흥에 있었으나 근년에 현 위치인 서구 공촌동으로 이장하였으며 그때 신도비도 함께 이곳에 옮겼다고 한다.신도비는 높이 1.9m, 너비 0.85m, 폭 0.53m 규모이며,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홍봉조가 썼으며 유척기가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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