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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문화재

조서강 묘 (趙瑞康墓)

by 형과니 2023. 6. 9.

조서강 묘 (趙瑞康墓)

인천의문화/인천의문화재

 

 

6(서구)

명 칭 조서강묘(趙瑞康墓)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무덤/ 봉토묘

수량/면적 1

지 정 일 1990.11.09

소 재 지 인천 서구 석남동 산119-2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백천조씨위공경은당파종중

관리자(관리단체) 백천조씨위공경은당파종중

상 세 문 의 인천광역시 서구 문화공보실 032-560-4343

일반설명 | 전문설명

 

 

조선 초기의 문신인 경은(耕隱) 조서강(?1444) 선생의 묘소이다.

 

태종 14(1414)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세종 25(1443)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세종 13(1431)에는태종실록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이조판서 역임후 사직할 것을 청하고 부친 조반의 별장이 있던 가정(佳亭)에 은거하였다.

 

그가 은거하자 세종은 궁중의 화가를 보내 가정에서의 모습을 그리도록 하였으며, 이후 많은 선비들이 가정을 주제로 시를 지었다. 안평대군은 이를 모아석호가정별업도라는 서화집을 만들기도 하였다. 묘역에는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두른 봉분을 중심으로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묘비와 문인석이 있다.

 

조서강(?1444)의 자()는 자경(子敬), ()는 경은(耕隱)이다. 태종(太宗) 14(1415)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후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올랐다. 세종(世宗) 13(1431) 기주관(記注官)으로태종실록(太宗實錄)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이조판서 역임후 사직할 것을 청하고 부친 조반()의 별장이 있던 가정(佳亭)에 은거하였다. 그가 은거하자 세종(世宗)은 궁중 화사(畵師)를 보내 가정의 모습을 그리도록 하였고, 이후 많은 선비들이 가정을 주제로 시를 지었으며 안평대군은 이를 모아 석호가정별업도(石湖佳亭別業圖)라는 서화집을 만들기도 하였다. 현재 묘역(墓域)에는 호석을 두르고 봉분(封墳)을 중심으로 조선 초기에 제작된 복련형(覆蓮形) 옥개석(屋蓋石)에 비신과 기단이 일체형을 이루고 있는 묘비와 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