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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차별대우에 일어선 인천부민

by 형과니 2023. 3. 16.

차별대우에 일어선 인천부민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31 00:56:06

 

인천부윤에 대항 사회단체 총궐기 시도

19.차별대우에 일어선 인천부민

 

 

송도국제도시의 법정동 명칭인 송도동지명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송도’(松島)란 지명은 예전에는 인천에서는 없었던, 1930년대 일제가 만든 언어 쇠말뚝이란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시기 인천부윤(현 인천시장)인 마쓰시마 키요시(松島 淸)의 이름을 따 일제가 송도란 지명을 새로 만들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마쓰시마 키요시가 인천부윤으로 재직할 당시, 인천부민들이 총궐기대회를 열려다 경찰의 제지로 무산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일제는 겉으론 내선일치(內鮮一治)를 주창했지만, 실제론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심했다.

 

19316월 인천부민들의 항거는 마쓰시마 키요시의 편파적 태도에서 비롯됐다. 193161일 인천부의회(현 시의회) 김중섭 의원은 인천부 체납세금 징수원의 불법행위에 대해 인천부윤에 따져물었다. 인천부윤이 불법행위를 알고도, 조선인과 일본인을 차별해 처리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고, 이 일은 공직자 뿐 아니라 각 사회단체로까지 번져 일파만파 확대일로에 있었다.

 

동아일보는 193165일 신문에서 5건의 관련기사를 할애하며 비중있게 다뤘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그해 513일 오후 2시경 인천부의 리원(吏員) 코이께(小池)가 인천부 외리 96번지에 살고 있는 박윤배(당시 68)씨가 체납한 가옥세 230전을 징수하기 위해 박씨의 집에 들렀다.

 

당시 박씨의 집에는 아녀자만 있었을 뿐, 주인인 박씨는 집에 없었다. 이에 코이께는 세간살이에 차압딱지를 붙이며, 강제집행에 나섰다. 이 때 박씨가 들어와서 밀린 세금을 주며 차압을 만류했는데, 코이께가 공무집행 방해라며 박씨의 멱살을 잡고 뺨을 때렸고 이를 말리던 박씨의 며느리까지 구타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박씨의 아들 기양씨가 집으로 달려와 자기 부친과 형수가 무참히 구타당한 것을 보고 격분, 코이께에게 불법행위를 질책하며 뺨을 때렸다. 이에 코이께가 불법행위에 대해 사과하면서 일이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기양씨는 당시 인천부 내무계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문제는 당시 인천부윤이었던 마쓰시마 키요시가 불법행위를 저지른 코이께를 징계처분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안으면서 박기양에 대해 즉시 면직처분한 데서 비롯된다.

 

이에 인천지역 각 사회단체는 신간회 인천지회를 중심으로 64일 긴급 연합회를 개최, 대책을 강구하고, 인천부 당국을 성토하는 연설회를 개최할 것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 연합회의는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다.

 

각 사회단체들은 마쓰시마 키요시의 편파적인 행위가 부당하며, 이는 조선이에 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인천부 리원의 불법행위는 조선인 생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 이를 바로잡고자 했다.

 

마쓰시마 키요시가 코이께를 감쌀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동아일보는 코이께는 경기도지사가 추천하여 등용한 사람이었고, 이로 인해 조선인들의 감정을 더 부추기고 있다고 보도한다.

 

마쓰시마 키요시는 인천부윤으로 오기전까지 경기도 경찰부에 근무한 경찰 간부였으니, 상급자인 경기도지사가 추천한 인물을 감싸고 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쓰시마 키요시의 부당한 결정에 대해 격분한 것은 조선인과 사회단체만이 아니었다. 당시 보수적이었던 부의회도 인천부윤의 부당한 처분에 대해 경고했다.

 

부의회는 1일 인천부윤에 이 사안과 관련해 긴급질의했으나 마쓰시마 키요시가 답변을 회피, 다음날 직접 부윤을 찾아가 엄중히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마쓰시마 키요시는 동아일보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코이께가 박윤배와 그의 며느리를 구타한 사실이 없다고 판명돼 처분하지 않았고, 코이께의 뺨을 때린 박기양의 행동은 공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을 구타한 것인만큼, 심히 불온당하다고 인정, 면직처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인천부민들은 코이께의 구타사실이나, 불법행위가 명백한데도 그를 감싼 것은 언어도단이며, 이래서는 인천부민들의 생활에 위협이 크다할 수 있어 인천부윤을 탄핵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후 이 건에 대한 당시 신문의 보도가 이어지지 않아 후속조치에 대해선 명확히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차별대우는 여기저기 흔적이 발견된다. ‘인천상고항일투쟁사’(77·148면 참조)에서 살펴보더라도 공부 잘 하는 조선인 학생에 대한 학교당국의 차별대우가 눈에 보였고, 일본인 학생들의 지배자적 행세로 학생들간의 편싸움이 빈번했다.

 

특히 징수원 불법행위건은 조선인에 대한 차별대우가 일반인들은 물론, 공직사회에까지 미쳤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주희기자

 

 

인천부윤 마쓰시마 키요시는  
마쓰시마 키요시는 1893년 일본 산형현(山形縣)에서 태어나 1922년 동경제국대 법학부를 졸업한 조선총독부 관리다.
1923년 조선총독부 경상남도 내무부 지방과 관리로 출발, 1925년 전라남도 경찰부 경무과 경시(警視), 1928년 경기도 경찰부 경시 등 주로 경찰관리직을 맡아 오다가 1930년 인천부윤에 임명됐다. 1934년 총독부 전매국 사무관으로 전직할 때 까지 약 4년간 인천행정 최고관리직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