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역사박물관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7-02-01 04:19:30
선교역사박물관
1885년4월5일 그날은 마침 부활절이었으며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날 오후 비를 맞으며 일단의 젊은 미국인들이 인천항에 상륙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입국하는 감리교의 아펜젤러 부부와 장로교의 언더우드였다.
그 장면을 아펜젤러는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데 이에 의하면 셋중 그의 아내가 제일 먼저 한국 땅을 밟았으며 아펜젤러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오늘 사망의 빗장을 산산히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이 얽매어 있는 굴레를 끊으사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옵소서” 갑신정변 여파로 우여곡절 끝에 입경한 그들은 서울에 병원과 학교 그리고 교회를 세웠다.
특히 서울의 서부지역에 주목한 감리교 선교부는 인천에 기지를 설립한다. 우각리 일대의 땅을 매입 교회를 세우고 영화학교와 선교사 주택을 건립하고 이를 에즈버리라 명명했다.
에즈버리란 미대륙에 감리교를 처음 선교한 영국인 선교사의 이름이었다.
내리교회가 위치한 시내 중심지를 마다하고 변두리로 결정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리 일대의 땅값이 개항직후 폭등했으며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인근에 우각역이 개설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창영교회가 자리한 창영동 42번지를 비롯 금곡동 58번지 일대와 송림동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1930년대 창영동에 3동의 서양식 건물로 남게 된다. 즉 남 여선교사의 숙소 그리고 아펜젤러의 숙소였다.
아펜젤러 숙소는 그후 한전에서 매입 변전소가 되었다가 지금은 모 교회가 되었다.
남선교사 숙소는 1942년 정미업자 주정기씨가 매수했는데 몇차례 전매되어 그 자리에 지금 인천세무서가 자리하고 있다.
나머지 여자숙소가 현재 인천시 지정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선교역사박물관이 인천에 세워지리라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인천은 처음 선교사가 상륙 기독교를 전파한 곳이어서 인천에 선교박물관이 건립되어야 함은 마땅하다.
장소도 선교사들이 그 기지로 삼았던 창영동이 적지이다.
지금은 낙후지역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재개발과 정비가 선행되면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1885년4월5일 그날은 마침 부활절이었으며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날 오후 비를 맞으며 일단의 젊은 미국인들이 인천항에 상륙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입국하는 감리교의 아펜젤러 부부와 장로교의 언더우드였다.
그 장면을 아펜젤러는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데 이에 의하면 셋중 그의 아내가 제일 먼저 한국 땅을 밟았으며 아펜젤러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오늘 사망의 빗장을 산산히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이 얽매어 있는 굴레를 끊으사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옵소서” 갑신정변 여파로 우여곡절 끝에 입경한 그들은 서울에 병원과 학교 그리고 교회를 세웠다.
특히 서울의 서부지역에 주목한 감리교 선교부는 인천에 기지를 설립한다. 우각리 일대의 땅을 매입 교회를 세우고 영화학교와 선교사 주택을 건립하고 이를 에즈버리라 명명했다.
에즈버리란 미대륙에 감리교를 처음 선교한 영국인 선교사의 이름이었다.
내리교회가 위치한 시내 중심지를 마다하고 변두리로 결정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리 일대의 땅값이 개항직후 폭등했으며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인근에 우각역이 개설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창영교회가 자리한 창영동 42번지를 비롯 금곡동 58번지 일대와 송림동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1930년대 창영동에 3동의 서양식 건물로 남게 된다. 즉 남 여선교사의 숙소 그리고 아펜젤러의 숙소였다.
아펜젤러 숙소는 그후 한전에서 매입 변전소가 되었다가 지금은 모 교회가 되었다.
남선교사 숙소는 1942년 정미업자 주정기씨가 매수했는데 몇차례 전매되어 그 자리에 지금 인천세무서가 자리하고 있다.
나머지 여자숙소가 현재 인천시 지정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선교역사박물관이 인천에 세워지리라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인천은 처음 선교사가 상륙 기독교를 전파한 곳이어서 인천에 선교박물관이 건립되어야 함은 마땅하다.
장소도 선교사들이 그 기지로 삼았던 창영동이 적지이다.
지금은 낙후지역으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재개발과 정비가 선행되면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교회 #내리교회 #중구 #동구 #선교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