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詩로 보는 '인천항' 정경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19-07-09 14:46:03
일제강점기 詩로 보는 '인천항' 정경
▲ 화물 선적 작업-조선인 지게꾼들이 줄줄이 화물을 선적하고 있다. 자료: 인천광역시, <사진으로 보는 인천 시사 ① >, 인천시사편찬위원회, 2013, 165쪽.
1883년 인천의 개항 이후 달라진 이곳의 정경은, 1920·30년대에 박팔양과 오장환이 창작한 시작품들에 반영돼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어 주목된다. 먼저 1927년 2월1일 진종혁이 주도해 인천에서 창간한 문예잡지 <습작시대> 제1호에는 여수(麗水) 박팔양(朴八陽, 1905~ ? )의 '인천항'이 수록돼 있어 관심을 끈다.
'조선의 서편항구 제물포의 부두/세관의 기는 바닷바람에 퍼덕거린다/젖빛 하늘, 푸른 물결, 조수(潮水) 내음새/오오 잊을 수 없는 이 항구의 정경이여//상해로 가는 배가 떠난다/저음의 기적(汽笛) 그 여운을 길게 남기고/유랑(流浪)과 추방(追放)과 망명(亡命)의/많은 목숨을 싣고 떠나는 배다//어제는 Hongkong 오늘은 Chemulpo 또 내일은 Yokohama로/세계를 유랑하는 「코스모포리탄」/모자 삐딱하게 쓰고 이 부두에 발을 나릴제//축항(築港) 「카페-」로부터는/술취한 불란서(佛蘭西) 수병(水兵)의 노래/「오! 말세이유! 말쎄이유!」/멀리 두고 와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노래를 부른다//부두에 산같이 쌓인 짐을/이리저리 옮기는 노동자들/당신네들 고향이 어데시요?/「우리는 경상도(慶尙道)」 「우리는 산동성(山東省)」/대답은 그것뿐으로 족하다는 말이다//월미도와 영종도 그 사이로/물결을 헤치며 나가는 배의/높디높은 「마스트」 위로 부는 바람/공동환(共同丸)의 깃발이 저렇게 퍼덕거린다//오오 제물포! 제물포!/잊을 수 없는 이 항구의 정경이여' - '인천항' 전문
위의 시에는 당시 인천항의 모습이 전면적으로 다뤄져 있다. 이 시에는 과거와 달라진 인천항의 정경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세관의 기'·'상해로 가는 배'·'세계를 유랑하는 코스모포리탄'·'술취한 불란서 수병'·'산동성이 고향인 부두 노동자' 등은 개항 이후 달라진 1920년대 인천 항구의 이국적인 광경을 보여주는 대상들이다. 세계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나타내주기에 충분한 제재들인 것이다. 이처럼 근대적인 항구도시로서의 경관이 시각적으로 제시돼 있어 이 시는 모더니즘적이라 할 수 있다. 또 이와 관련해 이 시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함께 나타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향의 노래를 부르는 불란서 수병뿐만 아니라 산동성 또는 경상도가 고향이라는 노동자들에게서 이러한 면을 느낄 수 있게 됨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더욱이 이 시의 2연과 3연에서 '유랑'과 '추방'과 '망명'의 많은 목숨이 배를 타고 '떠남'과, 세계를 유랑하는 코즈모폴리턴이 부두에 '내림'이 대조를 이루고 있음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1920년대를 전후해 국내에서는,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 외국으로 떠나거나, 죄가 없어도 국외로 내쫓기며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남의 나라로 몸을 피해 옮기는 사람들이 많았던 데 반해, 국내를 출입하는 세계주의자들의 수는 오히려 증가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시 '인천항'에서 '인천항'은 '공동환의 깃발'로 표상되는 일제 강점의 시대 상황에 놓여 있던, 당시 우리민족의 삶의 현장을 압축해서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이해된다. 이곳은 다름 아닌 그때 우리 국토의 축소판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오장환(吳章煥, 1918~? )의 '해항도(海港圖)'를 비롯해 '해수(海獸)' 등 항구를 시적 공간으로 취하고 있는 시는, 실제로 당시 인천의 그것을 염두에 두고 쓰인 것으로 추측돼 더욱 관심을 끈다. 왜냐하면 이들 시에 등장하는 '영사관(領事館)'이나 '조계(租界)', '홍등녀(紅燈女)'뿐만 아니라 '외인의 묘지'와 '세관의 창고' 등은 당시 이곳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상들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광복 직후 오장환이 배인철 등의 시인 및 김만환 등의 화가와 '인천신예술가협회'를 결성하는가 하면, 인천에서 시낭독 행사를 갖기도 했으며, 월미도에 있던 미군 흑인부대를 형상화한 시 '가거라 벗이여- 흑인병사 L. S. 브라운에게'와 같은 인천 시편을 남겼다는 점 등은, 그의 광복 이전 시 중에도 인천 시편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식민지 시대 항도 인천에서의 체험을 시로 형상화한 것으로 판단되는 '해항도' 및 '해수' 등의 시에서 보이는 '환각의 도시'로서의 이곳의 모습은, 당시 우리민족이 처해 있던 구체적인 삶의 실제 현장의 한 단면을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박팔양의 '인천항'과 오장환의 '해항도'·'해수' 등의 시에서는, 일제강점기 근대 항구도시 인천의 부정적인 이면(裏面)을 엿볼 수 있다. 세계 국제도시로서의 긍정적인 면모만이 아니라, 그와 공존하는 환각의 도시로서의 모습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세계 국제도시로서의 발전을 추구하는 인천에 있어 지금, 등한시하는 부분은 없는가? 2016년을 마무리하며 생각해 볼,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다. 황규수 동산중 교사·문학박사
▲ 인천일보, INCHEONILBO 2016.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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