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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사람들의 생각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by 형과니 2023. 3. 18.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07 04:19:56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인천광장-김철성 자유기고가

 

올해의 끝자락에 책 한권이 배달됐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도록'이다. 낯선 곳에서 잊고 지냈던 낯익은 향수와의 재회, 가슴을 뜨겁게 한다. '뜨거움'의 중심엔 불치병인 '향수'가 똬리를 틀고 있음을 왜 모르랴. 그랬다. '향수'는 생명체의 공통된 정서다.

 

필자의 일터인 전남농업박물관의 관람객 중 기억에 남는 두 사람이 있다. 목포에 사는 어느 교회의 장로와 지금 막 귀향해 고향에 공장을 짓고 있는 기업가로 모두 영암이 고향이고 서울에 살다 내려온 이순에 가까운 나이들이다. 무엇이 이들을 회귀케 했을까. 어렸을 적 떠난 고향을 다시 찾아온 이유는 거두절미하고 '고향이 그리워'서란다. 다행이 개발의 손길이 덜타 기억 속 산천과 건물, 골목길과 정자나무가 남아 있어 맘껏 향수와 운우지정을 나눴단다.

 

어찌 움직이는 박물관인 '도록'도 물기 묻어나지 않으랴. 부처의 사리만 사리가 아니다. 도록 속에 박힌 사진들과 글 행간마다에 추억의 사리는 과거가 아닌 늘 현재로 빛나고 있었다. 도록에 실린 사연 몇 가지, 1953년 학교 때문에 인천에 올라온 남기영 씨는 1968년 송현동 44번지에 방 3개인 초가집에서 살았고, "요즘은 지난날의 그때 그 시절 달동네 옛 이웃들 생각을 자주 그리게 되니 반백의 초로인생이 되어서 그런지 자꾸만 지난날의 추억을 지울 수가 없네요"라고 말한다.

 

"어린시절 동네 아이들과 이곳을 오르내리던 그 시절, 높게만 느껴졌던 수도국산! 40년 만에 이곳을 찾고 보니 이 곳 달동네(박물관)가 있어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독일 해외 교포 드림). "똥고개 정말 그립군요. 수도국산 넘어 잠자리 잡던 추억, 눈 오면 썰매 타던 그리움, 모두 추억이 되어버렸네. 그립다. 송현동 똥고개 친구들아"(82년생 이태희).

 

그렇게들 고향 그리워하고, 파편같은 흔적 찾으려 하면서도, 무분별한(싹쓸이) 도시 개발에는 왜 반대나 저항하지 않는 걸까. 얼마간의 금전적 이익과 남의 일이라는 이유로 모두 '청맹과니'가 돼버린 걸까.

 

지난달 동구문학제때 찾은 인천의 모습 중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서 창영초교 앞으로 이어지는 옛 경인가도인 우각리길을 가로질러 큰 도로가 건설되는 현장을 목도했다. 물론 큰도시건설에 따른 교통량 해소라는 대의야 없겠냐만, 인천시민 삶의 진정성이 밴 유서깊은 공간을 훼손한다는 것은, 제이콥스 말처럼 "도시인들의 삶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영위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연구하기보다는 탁상의 이론가들이 그려내는 설계도를 그들에게 부과하려는 행위"일 것이다.

 

이일훈은 '보존보다 나은 개발은 없다'는 칼럼에서 "오래된 동네를 부수고 재개발을 하는 경우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 값이 오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민들이 환영하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경축 재개발 사업 승인' 등의 현수막을 보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아니 수십년 살던 동네와 집과 이웃과 추억과 삶의 흔적이 통째로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그리 경축할 일인가 말이다"라고 썼고, 이명원도 "한국의 기형적인 도시화는 과거의 흔적들을 워낙 매끈하게 지워나가는 것이어서, 실존적 장소의식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듯하다 한국의 도시화는 기억이나 역사로서의 실존적 장소의식과는 무관한 '부동산'으로 전락하고 있는 듯하다"고 진단했다.

 

이런 개발광풍의 와중에 '달동네 역사를 박물관으로 남기자'는 아이디어를 낸 지역문화단체 ()해반문화사랑회, 그리고 그 같은 황당한 제안을 실현시킨 공무원집단 동구청에 의해 '수도국산 달동네'가 보존될 수 있었으니 수도국산이 고향인 사람들에게 달동네 박물관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겠는가./인천광장-김철성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