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도시 어두운 밤 대탐험기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21-07-06 00:57:49
本支社記者 五大都市 暗夜 大探査記
禮拜堂 그늘의 收穫 [예배당 그늘의 수확]
번개가티 달니여 O里 예배당에 가닛가 3일이라 일요일보다 적게 모힌 것이겟스나 그래도 남자가 20여 여자가 40여명 壇上 걸상에 목사는 아니라는데 노인 사회자가 코를 고는지 기도 내용 연구를 하는지 쭈구리고 안젓고 25세나 잘 되여야 이십팔구되엿슬 하연 양복 청년이 설교인지 講道인지 열심으로 끙끙대고 잇다.
『우리가 아노 목적지가 업시 散步로 나서서 거를 때에는 길 좌우 엽 상점들 窓에 마음과 눈을 빼앗기지만 가정에 급한 병이 잇서서 급히 뛰여 갈 때는 아모리 길거리에 찬란한 것이 잇드래도 그것이 우리 눈에 뜨일리 업는 것임니다』 여긔까지는 過히 틀릴 것 업는 말인데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활에 아모리 무서운 압박과 경제적 핍박이 심하드래도 우리가 예수씨 말슴만 꼭 밋고 돌진해 나가면 그것이 우리에게 거릿기지를 안는 것임니다』 이따위 卓說을 하고 섯는 것 보면 젊은 청년이 얼골이 앗가워 보인다. 경제적 핍박이 아모리 심하더래도 예수씨의 무삼 말슴을 밋고 어데로 돌진하자는 말인지 경제 핍박이 왼편 빰을 따리거던 바른편 빰까지 내여 대라는 말슴만 밋고 漢江鐵橋로 가서 천당으로 돌진하자는 말이라면 말인즉 올흔 말이다.
『여러분 우리는 결단코 이 세상의 향락에 빠저서는 안됨니다. 허영과 위선 덩어리인 소위 예술이니 철학이니 하는데 빠저서도 안됨니다. 우리는 오즉 무엇을 밋고 나아갈고 하니 우리 救主이신 예수 밧게 업슴니다. 누구보다도 불상한 우리 조선 사람은 오즉 예수를 밋고 나가야 구원을 밧을 수 잇는 것임니다』 말이 여긔에 까지 니르는 것을 보면 그의 이마 속에서 구덕이가 끌는 것을 알 수 잇다. 이런데 모이는 사람들이 모다 이따위 생각을 가젓다면 참말로 二千三百萬에서 빼여노코 나갈 일이다.
하도 구역이 나서 마당으로 뛰여나오니 마당 나무 그늘에서 쪽진 부인 한 분과 양복 닙은 중년 신사 한 분 설교보다 緊한 密談을 하고 잇스니 映畵狂 아닌 이가 보아도 러부씬-이다. 설마 그럴 리 업슬 터이니 드러 보면 알리라고 마당 저편 구석 숙직실인지 小使室인지 그 압헤 가서 물먹는 톄하면서 그 밀담에 귀를 기우리닛가 벌서 눈치를 채엿는지 서로 헤여지려고 부인이 먼저 주춤주춤 떠러저 물너서면서 『남이 작고 보는데 웃저려고......』하닛가 남자도 따라 움즉이면서 『그럼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릴테니』『글세 오늘은 어린애를 안 데리고 나와서 늣게 못 잇서요. 주일날 가마는데 왜 그래요』 『그러지 말고 잠간 들러가요』 여자는 『에이』하고 혀를 차고는 예배당으로 天然히 드러가고 남자는 흥녁케 대문 밧그로 나간다. 독자 여러분. 나는 더 그 대화를 듯지 못하엿는대 여러분은 이상 두어마듸 대화를 무얼로 해석하겟슴닛가.
나도 다시 예배당으로 드러가닛가 그제야 그 고마운 설교가 끗나고 그 앗가운 얼골(설교하든 이)이 두 손을 번쩍드러 參禮者의 머리를 일제히 숙여 노코 자기도 단상에 꾸러안저서 설교하던 소리를 또 한번 고대로 되풀리한다. 그것이 끗나고 일동 起立 讚美歌 합창 그리고 그대로 기립한 채로 老司會者의 들니지 안는 족고만 기도가 끗나고 헤여지는지라 나는 얼른 먼저 튀여나와 대문 엽 나무 그늘에 守門을 하고 섯섯다. 흐터저 나오는 사람 중에 학생복이라고는 단 두 사람 하나는 인천O業인데 그들도 탐사기를 쓰는지 후닥닥 튀여나와서 대문 엽헤 守直하고 서 잇다. 맨 뒤에서 떠들면서 나오는 부인네와 여학생들 그 중에 앗가 그 밀담부인이 제일 미인인 것 가튼데 『아이그 애기 아버지께서 제주도 가섯다더니 아즉것 안 도라오섯소?』 老婦人이 무르닛가 그 밀담부인 『녜-인제 가을에나 온담니다』 대화도 天然하다. 독자여 이 대화과 앗가 그 밀담과 마추어 생각하면 엇더켓소잇가.
그 뒤에서 서울O花專門에 다닌다는 풍금 치는 여자와 그 동행 이쪽에 검찰관처럼 서 잇는 남학생보고 『X선생 왜 안가고 거긔 스섯슴닛가』한다. 학생으로서 선생님이란 소리를 듯는데에 현대 연애의 맛이 잇는 것이다. 하나도 남은 사람 업시 다 도라간 것을 보고 나도 R군을 재촉하야 천천히 나아가닛가 골목 밧갓 冷麵집 압헤서 여학생 두 사람(編髮處女)이 기다리고 잇다가 남학생 2인 중의 인천O業 학생보고 꿉벅 하더니 남자가 『에그 참 제가 편지로 말슴드린 것』하닛가 여자가 몸을 좌우로 비비 흔들더니 손수건을 헤치고 지갑을 꺼내더니 그 속에서 하연 종의 착착 접은 것을 끄내서 남학생을 주고 또 몸을 비비 흔든다. 그리다가는 『감사합니다』 『아니야요』 꿉벅 꿉벅 여자들은 停車場 쪽으로 남학생들은 바다 쪽으로 약속한 듯이 다름질해 간다. 아-아
1935 본정통 일본인거리
雜同散異 見聞 [잡동사니 견문]
시간이 10시 25분 밝은 달이 바다의 서늘한 바람을 꼬여다가 市街에 부어주는 것처럼 서늘하다. 龍洞 큰길로 거러서 싸리재 고개를 넘어 栗木里 근방으로 가니 길거리 상점마다 부인네 손님이 만흔 것을 보면 서울 가트면 夜市 구경 핑계로 散步 나오는 부인네 폭인가 십다. 고개 넘어에 留聲器도 업는데 부인네 만히 모힌 곳이 잇기에 보닛가 서적과 문방구 잡화를 파는 조고만 『喜文堂』이란 상점이다. 젊은 주인이 읏더케 상략하게 친절하게 구는지 장사 術이 인천에서 유명하야 학생들과 부인네 고객이 날마다 이러케 만탄다. 잠간 서서 보니 딴은 5錢어치 물건에도 단추 景品과 기차 시간표를 더 주고 잇다. 商界에도 이러케 묘한 鬪士가 생기는 일은 저윽이 조흔 일이다.
그 길로 外里에 드러서니 이곳이야말로 이상한 갈보鄕이다. 풋내기 米豆꾼이 줄면서 반이나 줄엇다는 것이 이러케 거의 戶마다 酒店이요 酒店마다 갈보아씨다. 京城 色酒家와 달른 것은 집마다 선술청을 꾸며 논 것이요. 손님의 요구를 따라 房술을 따른다는 것이요. 막걸리와 燒酎 엽혜 正宗을 바더다 놋코 소주잔 한잔에 5錢씩 파는 것이다. 집집이 보아야 미인도 업는 모양이요. 볼만한 손님도 업시 그저 이 집 저 집 떠들고 도라 다니는 酒酊客이라고는 모다 일본 상점 점원들뿐이다.
요리집 三成館은 손님이 업시 2층이 캄캄한데 뽀이들이 短簫만 불고 잇고 日月館이라야 米店 주인 한패가 장고를 뒤들길 뿐 米豆場 쓸쓸해진 인천의 유흥장은 去勢를 당한 것 갓다. 열시 반이나 되여 活動寫眞 愛館 압흘 직혀보니 모다 나오는 客이 2백 명쯤 될가 한데 학생도 적고 여학생이라고는 단 세 사람 저의끼리 뺑손을 치고 맨 나종에 나오는 기생 두 사람이 공연히 이 골목으로 갓다 저 골목을 나왓다 하면서 극장 사람과 弄지거리를 하다가 도라갓다.
싸기로 유명한 인천 참외 경성 가트면 5錢짜리를 1錢씩에 사서 맛보고 배다리를 넘어서 敷島町을 가니 여긔가 遊廓 이것만은 히야까시 客이나마 만치 안어서 아씨들이 바느질만 하고 안젓난대 배 부리는 얼골 검은 사람 수염 털보 맨 저고리 바람으로 『족곰 덜 하렴으나』하고 흥정하다가 그냥 다음 집으로 가고 가고 하는 것이 서너패 잇슬 뿐이다.
해변으로 도라 *寺町을 드러서니 좁다란 골목에 엇지 그리 선술집이 만흔지 勞働村이라 合宿所도 만코 싸홈패도 만히 잇는 곳이라는데 새로 1시가 넘엇것만은 점심때까지 紛雜스럽다. 『그래 이놈의 계집년아 쌀 골느러 다님네하고 감독 놈을 부터 먹던지 事務員 놈을 부터 먹던지 너 혼자 할 일이지 무엇 때문에 남의 집 게집애까지 부처 주어......그래 이년아 얼마나 바더먹엇니 얼마나 바더먹엇서-』 『너 이년아 그래 먹고 배속이 편할 줄 알앗듸?』 洞里가 들먹어리게 큰 소리로 떠드는 여편네 한사람 상대자는 보이지도 안는데 남의 집 대문을 드려다 보면서 야단이다. 『이년아 안 먹엇스면 떳떳이 나와서 왜 말을! 왜 말을 못하느냐 말이야 이 치독을 마질 년아』 화가 점점 놉하 가는데 『압다 얼골이나 번번하닛가 감독 나으리를 엇지 지금 야단치면 소용잇나』 『엽븐 애기 정미소에 보내면 의레 그럴 줄 알 노릇이지 별 수 잇답뎃가』 길가에서 자다가 깨인 勞働群 냉정하게 웃는다.
조선서 청요리 제일인 곳이 인천이요. 인천서 제일 조흔 집이 中華樓라 모여드는 遊客이 만타기에 밤새여 영업한다는 말을 밋고 그 길로 支那街를 지나 차저가니 한 時도 30분이나 넘어서 金懸板 달닌 문이 꽁꽁 잠겻다. 마즈막으로 인천 제일의 秘密窟이란 『터진개』를 차저가니 新町 일본인 상점만 뺑 둘러 싼 곳인데 굴둑 속 가티 좁은 벽 틈으로 간신히 긔여 드러가닛가 千萬 意外에 色酒家만 10여 호 오붓하게 드러 안저잇다. 딴은 이래서는 인천 사는 사람은 고사하고 이 洞里에 사는 사람도 이 속에 賣酒賣淫家가 폭 숨어 잇는 줄은 꿈도 못 꾸게 생겻다. 찻기 어려운 秘密窟에 드러온 길에 한잔 맛이나 보려고 한집에 드러 가닛가 어이쿠머니 웃통 버슨 병아리 가튼 색시를 코떠러진 식껌언 친구가 끠고 안저서 놀 줄도 모르고 뻔뻔히 내다보고 잇다. 엇더케 단번에 정이 떠러지는지 구렁이를 밟은 것처럼 그냥 튀여나와서 다른 집도 안 드려다 보고 그냥 긔여 빠저 나왓다.
인천의 철 업는 경성 통학생들이 통학 여학생 미인 투표를 하려다가 각 방면에 꾸지람을 톡톡히 듯고 중지하엿다는데 그 일등에 당선할 번 하엿다는 崔孃 金孃의 이날 이 밤의 動靜을 삷히고 십헛스나 시간이 업서서 못한 것은 섭섭하엿다. 오후 두시 숙소로 가는 길에 一時 米豆王이라던 반氏가 서울 美人O洞 짜겟의 형님을 어더 가지고 흥청거릴 때 집 지으려고 터를 닥거 노앗다는 놉다란 城築을 보니 그의 애인은 所生兒까지 다리고 도망하야 예전 애인 柳某와 동거한다는대 닥거 노은 집터는 남의 소유가 되고 수중에 一分이 업시 안저서 그대로 이번 녀름에는 米豆로 다시 乘勢하겟다고 별으고 잇다는 그의 얼골이 눈에 뵈는 것 갓고 역시 『仁川』이다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두터웟다.<72>
各都市探査記歡迎 - [각 도시 탐사기 환영]
文明의 바람이 날로 불어 들어오는 소위 都會地에 惡風이 따러서 심하야 모든 假面을 쓰고 暗中 활약하는 무리도 날로 늘어갑니다. 우리는 지금껏 경성 방면의 그런 魔窟 만 탐사하여 왓스나 압흐로는 지방도회에 까지 極力 탐사하기에 노력코저 하오니 有 志하신 이는 책임잇는 자료를 만히 공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별건곤 제15호
발행일 1928년 08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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