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동 / 스케치에 비친 인천 / 칼국수 끓는 냄새는 사라져가고
인천의관광/인천풍경
2022-03-22 23:21:27
용동 / 스케치에 비친 인천 / 칼국수 끓는 냄새는 사라져가고
뜨끈한 국수 한 그릇에도 역사는 녹아 있다. 권번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옛 칼국수 거리가 나온다. 1970~1980년대 이 골목은 국수 끓는 냄새로 진동했다. ‘칼국수 거리’라고 쓰인 이정표는 사라진 지 오래, 단 두 집만 가까스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오기 싫은 걸 억지로 끌려왔어.” ‘새집 손칼국수’의 이순희(78) 할머니는 스물다섯에 서울에서 인천으로 시집왔다. 시어머니가 이 골목에서 여관을 했다. 술집 동네였다. 해가 땅 밑으로 떨어지기 전부터 취기 오른 사람과 한복 입은 색시들로 북적였다. 몇 년 동안은 어머니가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 그러다 1975년, 서른 줄에 이 집을 짓고 덜컥 음식 장사를 시작했다.
술 마신 다음 날 속을 달래는 데 시원한 칼국수 국물 만 한 게 있으랴. 연탄불에 칼국수를 끓여 내기가 무섭게 손님이 밀려들었다. 1980년대 한창때는 하루에 밀가루 한 포대를 다 썼다. 지금은 열흘이 지나도록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다. 얼마 전엔 한집처럼 장사하던 ‘초가집’이 문을 닫았다. 국숫집이 사라진 자리엔 번듯한 카페가 들어섰다. 주인은 3개월 전 저세상으로 마지막 길을 떠났다.
“남 일 같지가 않아.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어. 자식들에게 미안하고 창피해.” 큰아들은 시장상까지 받은 라디오 방송 아나운서로, 작은아들은 연구원으로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그런데도 허리 굽도록 일하는 삶이 행여 자식에 누가 될까, 마음 쓰인다. 어머니는 어머니다.
“아이고, ‘하얀 할머니’ 오셨네.” “아줌마 보려고 일부러 왔어.” 최상유(92) 할머니는 이 집의 오랜 단골이다. 따뜻한 밥 한 끼 드시라고 딸, 사위가 모처럼 단골집에 모시고 왔다. 그렇지 않아도 이 집 콩국을 좋아하던 할머니가 여름 한철 보이지 않아 걱정하던 터였다.
“내, 맛있게 푹~ 끓여드릴게.”
고른 한낮이 지나자, 식당 빈자리가 손님으로 드문드문 채워진다. 대부분 같이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살 깊어 가는 노인들이다. 가족 같은 그네들 따뜻한 한 끼를 위해 할머니가 분주히 움직인다. 작은 그의 뒷모습이, 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할머니의 굽은 등 위로 창 너머 햇살이 나지막이 드리운다.
굿모닝인천 2022년 3월호, 스케치에 비친 인천, 용동 ‘분 향기 흩날리던 골목, 바람만 고요히 일고 https://www.incheon.go.kr/goodmorning/GOOD010101/view... 그림 김재열 사진 임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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