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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문화/인천배경문학,예술,문화

종소리 들으며 / 최경섭

by 형과니 2025. 3. 12.

종소리 들으며 / 최경섭

 

X마스 무렵, 얼마 안 있어 해가 바뀐다는데, 오늘은 한 차례 눈이 내렸다. 그리곤 바람이 분다. 다시 볕이 들었다.

 

수봉산을 한 바퀴 돌아오는데 한 여인이 길을 물었다. 백련정사(白蓮精舍) 가는 길을 물었다. 부용암(芙蓉庵)도 연화사(蓮花寺)도 아닌 백련정사 가는 길을 물었다. 연꽃을 또 부용이라고도 했다던데......

 

밤을 새지 않아도 이 해는 가는 것, 새해는 별것이랴. 종 소리 소리소리 해가 바뀐다. 앉아서도 서서도 깨어서도 잠들고도 세월은 가는 것, 종소리 소리마다 해가 바뀐다. 은 은히 들려오는 반야심경 한 구절..…….

 

천상의 종소리·저승의 종소리--

에밀레의 종소리·월정사(月精寺)의 종소리--

노틀담의 종소리·부룩필드의 종소리--

쇠로 만든 북의 소리--쇠북소리 뎅뎅뎅, 그 쇠북소리에 세월을 싣고, 인생을 싣고, 쇠북소리 들으면 바닷속 같다. 이 세상 모두모두 바다 속 같다. 은은히 들려오는 소리 무늬—물결 무늬

 

그 바다 속에 모닥불·화톳불 활활 피우고, 짐짓 고즈넉 이 밤을 새자.

 

-본심·본연·늠연(凜然의연

 

<종소리 들으며, 1983.

 

최 경섭 : 평북 희천 출생(1910)으로 농업고를 거쳐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유학과 해방을 겪고 잡지사 편집기자, 1955년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끝으로 57년 교직에 입문, 인천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정년을 넘기셨다.

1937
조광지초추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고 38년 첫시집 풍경을 간행하였으며 긴 휴식기 뒤 68년 제2시집 ··을 간행했다. 이 시집은 저자의 인간적 수련과 경험, 인내의 과정을 잘 묘사한 글로 평가 되었다.

 

1969년 경기도 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경기도 문인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연당 선생은 시인의 소양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또다른 시간속에 살았다면 시인으로 대성할 사람이라고 칭송이 자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