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 / 박인환
사진잡지에서 본 향항 야경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중일전쟁 때
상해부두를 슬퍼했다
서울에서 삼천 킬로를 떨어진 곳에
모든 해안선과 공통되어 있는
인천항이 있다.
가난한 조선의 프로필을
여실히 표현한 인천항구에는
상관도 없고
영사관도 없다
따뜻한 황해의 바람이
생활의 도움이 되고저
냅킨 같은 만내로 뛰어들었다.
해외에서 동포들이 고국을 찾아들 때
그들이 처음 상륙한 곳이
인천항구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은주와 아편과 호콩이 밀선에 실려 오고
태평양을 건너 무역풍을 탄 칠면조가
인천항으로 나침을 돌렸다.
서울에서 모여든 모리배는
중국서 온 헐벗은 동포의 보따리같이
화폐의 큰 뭉치를 등지고
황혼의 부두를 방황했다.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
주둔소의 네온싸인은 붉고
짠그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온 작크가 날리든
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어간다
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
상해의 밤을 소리없이 닮어간다.
<신조선, 1949.4>
▲ 찰리부두(Charlie Pier) 전경. 6·25 발발 이듬해인 1951년부터 미군의 전용부두로 사용된 인천항 제물포부두의 잔교로 지금의 중부경찰서 앞쪽 일대에 있던 객선부두 옆이었다./사진출처=사진으로 본 인천개항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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