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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공책

다정다한(多情多恨) (사실소설)

by 형과니 2025. 7. 20.
다정다한(多情多恨) (사실소설)

백악춘사

1
시절은 대한제국 광무 5년(서기 1901년) 무렵인가. 흘러가는 가을빛은 온 대지를 감싸 안아 나뭇가지와 풀잎마다 노랗게 물들였고, 봉봉하게 피어오른 먹구름 속에 숨었다가 벗겨지며 떨어지는 해는 서해 수평선 위에 반쯤 걸려 상하 천지를 진홍빛으로 물들인 듯했다. 순풍에 돛을 달고 제물포로 돌아가는 어부들의 뱃노래가 "울굴굴" 울리고, 밀려오는 조수 소리, 떠올랐다 잠겼다 펄펄 날아드는 흰 갈매기 소리가 자연의 묘한 즐거움을 함께 노래하는 듯한 때였다. 이때, 간소한 복장에 한 마리의 말을 타고 어린 동자 한 명을 거느린 한 나그네가 인천항 유현(지금의 율목동 또는 내동 일대)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나이는 마흔쯤 되어 보였고 용모는 수려하며 풍채 또한 비범했으나, 오랜 세월 타향살이의 풍상을 겪은 탓인지, 혹은 세상살이의 쓴맛을 본 탓인지 안색은 초췌하고 창백했으며, 광대뼈가 약간 솟아올라 마치 어떤 숨겨진 슬픔을 머금은 듯했다.

2
앞서 말한 나그네의 흔적을 추적해보니, 그는 경성 계동에 거주하는 삼성 선생이었다. 선생은 원래 품성이 뛰어나고 지기(志氣)가 활달하여 청년 시절 항상 스스로 생각하길, '어찌하면 남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 평범한 속인이 되지 않고, 당대에 보기 드문 큰 사업을 이루어 온 세상의 이목을 놀라게 하며 천추에 웅대한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 하고 가업을 포기했다. 신법(神法)과 기술(奇術)을 배우고 인정(人情)과 풍토를 연구하기 위해 팔도 강산을 두루 다니며 명산대천과 이름난 도시들을 역방(歷訪)하고, 이른바 '이인(異人)'과 '도승(道僧)', '기사(奇士)'와 '술객(術客)'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러나 '이인'과 '도승'이 별다른 사람이 아니요, '기사'와 '술객'이 모두 헛된 이름에 불과함을 깨달고 마음에 불만족을 품고 돌아왔다. 이후 모든 세속적인 명예나 이득에 대한 욕심을 끊고, 고금의 실용적인 학문과 외국의 새로운 지식을 남몰래 스스로 익히며 무료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 물 흐르듯 가는 세월 속에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리려 할 때, 건양 원년(서기 1896년)에 돌아와 하늘의 운수가 크게 돌고 나라의 운명이 새로워지자 경무국장(지금의 경찰청장)이라는 영예로운 자리에 임명되었다.

…이때 독립협회로 이름이 바뀐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가 정동에서 보부상군(負商軍)의 큰 타격을 받고, 다시 용산 혈전에서 실패를 당하자 국내외 민심이 끓어오르는 듯 흉흉했다. 크고 작은 학교의 학생들은 일제히 동맹 휴학을 했고, 각 상점은 문을 닫고 봉기하여 한목소리로 민회에 가세했다. 이때 민회는 본진을 종로에 두고 바람을 맞고 이슬을 맞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편으로는 연사를 파견하여 인심을 고취시켰다.

당국에서는 온갖 방법으로 민회를 해산하려 했으나, 민회에서는 당국의 처사에 더욱 분개하여 백성과 당국 사이에 충돌이 날로 심해졌다. 이때 성안의 풍경은 괴이한 구름이 음침하게 드리우고 살기가 등등하여 금방이라도 피바람 부는 활극이 벌어질 듯했다. 어느 날 밤, 경무국장에게 급한 통지가 내려왔으니, 즉시 순검 수백 명을 이끌고 가서 민회를 진압하라는 것이었다. 삼성 선생은 깊은 생각에 잠겨 거절하며 "말로 내려온 명령은 결코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당국에서는 국장을 불러들이기에 이르렀다. 선생이 정부에 들어가 이렇게 잔학무도한 정령(政令)은 도저히 집행할 수 없는 이유를 거침없이 항변하며 나왔다.

이때 경무청 안의 순검 수백 명은 이 통지의 비밀스러운 하달을 알아내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 의논했다. "민회 회원들은 곧 우리 각자의 부형과 친척이다. 이들을 진압하는 것은 우리 부형과 친척을 진압하는 것이니, 어찌 천리인도(天理人道)에 어긋나는 일을 행할 수 있겠는가. 만일 국장께서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여 이처럼 부당하고 참혹한 일을 무리하게 수행하려 하시면, 우리는 일제히 순검을 내놓고 동맹 퇴직하자"고 결의하고 있던 중, 선생의 항변이 받아들여졌음을 듣고 수백 명의 순검들은 선생의 탁월한 의견에 감격하여 칭송했으며, 이후로는 선생에게 더욱 깊은 신뢰를 보냈다. 선생이 경무국장에 임명된 이래 몇 년 동안, 이처럼 대중의 반대를 물리치고 여러 비난을 개의치 않으며 자신을 국가에 바치고 정성을 공무에 다하여, 평생 가슴속에 품었던 큰 뜻을 만분의 일이라도 단행할 기회가 있기를 바랐다. 오호라, 하늘이 돕지 않고 인사가 다난하여 외로운 손바닥으로는 소리를 낼 수 없고(孤掌難鳴), 외바퀴로는 갈 수 없었다(隻輪不行). 선생의 고상한 사상과 강직하고 공정한 행동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조금도 비난받을 점이 없었으나, 오히려 의심의 초점이 되고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지위를 보존하지 못하고 결국 목포 경무관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선생은 쾌히 응낙한 뒤, 유람 겸 부임을 겸하여 즉시 짐을 꾸려 출발하였고, 배편을 기다리기 위해 인천항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었다.

3
한편, 선생이 목포 경무관으로 부임한 지 며칠 후, 어느 날 한 일꾼의 탄원(등소)을 들었다. 일꾼 청에서 일꾼 패장(役夫牌長)이 한 일꾼을 곤장 육십 도에 처하여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선생은 즉시 순검을 파견하여 해당 패장을 잡아와 심문하며 말했다. "관헌이 엄연히 있는데, 네가 무슨 명목으로 백성에게 사적인 형벌을 가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했느냐?" 패장이 답했다. "소인이 소인의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니옵고, 일꾼들 중에 불법을 저지른 자가 있으면 수시로 처벌하라고 감리사(監理使)께서 허락하신 조문에 의거하여 곤장형에 처한 것이옵니다." 선생이 물었다. "감리사께서 그런 조문을 허락했단 말이냐?" 패장이 답했다. "네, 과연 감리사께서 조문을 허락하셨습니다." 선생이 말했다. "그러면 그 조문을 가져오너라." 패장을 구금한 후 조문을 가져와 보니, 해당 조목 중에 '일꾼 중에 불법을 저지른 자가 있거든 수시로 처벌하되, 만일 중죄를 범한 자는 곤장 이십 도에 처할 수 있다'는 조건이 있었다. 이에 패장을 다시 불러 심문하며 말했다. "이놈 들어라. 이 조목 중에 중죄를 범한 자는 곤장 이십 도에 처하라 했지, 어디 육십 도에 처하라는 법이 있단 말이냐?" 패장이 답했다. "과연 해당 일꾼이 중대한 죄를 범했사옵기에, 이 법률에 의거하여 이십 도씩 세 번 처형했사옵니다." 선생이 이 패장의 대답을 듣고 비분강개하여 탄식하길, "이러한 관헌과 이러한 행정이 모두 법령을 부패시키고 백성을 가혹하게 하는 원인이다"라고 말하며, 즉시 감리사와 교섭하여 해당 조문을 그날로 철회시켰다. 그리고 선생은 수많은 일꾼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후에 간곡히 타일렀다. "오늘 해당 조문은 이미 파기되었으니, 너희들은 다시는 패장 등의 불법적인 고통을 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일 패장들 중에 예전의 고질적인 악습을 고치지 않고 불법행위를 감행하는 자가 있거든 즉시 내게 고소하라"고 하였다. 그 결과 오랫동안 완고하고 악랄한 패장들의 밥을 면치 못했던 일꾼들이 자유롭게 해방되자, 그 어리석고 순박한 일꾼들은 기쁨에 겨워 만세를 외치고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모습이 미국 남북전쟁 후에 자유를 얻은 흑인 노예의 그것과 흡사했다.

또한 선생은 자애심이 많고 동정심이 깊어서 자신의 월급을 모두 나누어 가엾은 부하들을 구제했으며, 그 후 한 경축일을 맞이하여 또 수십 금을 순검청에 하사하여 한차례 연회(宴會)를 베풀어주자, 순검들의 기뻐하고 칭송함이 무엇에 비할 바 있었겠는가. 이에 순검들이 경축 연회를 마련하고 선생의 큰 은혜에 감사하며 축배를 올렸다. 이때 선생의 상석에 앉아 창틈으로 우연히 보니, 어떤 사람이 삶은 돼지고기를 큰 그릇에 담아 가지고 남북으로 돌아다니다가 약 한 시간 후에야 술과 과일과 겸하여 술자리에 내놓는 것을 보고 선생이 속으로 생각하길, '필시 우매한 백성들이 또 귀신이나 신당 등을 숭배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연회가 끝난 후에 돌아왔다. 그 후에 한 순검을 개인적으로 불러 은밀히 물었다. "며칠 전 연회 때 내가 잠시 보니, 삶은 돼지고기를 가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데, 무슨 사연이 있는가?" 순검이 답했다. "이곳 산 아래 수백 년간 모시는 신당이 있는데, 대단히 영험하고 엄하여 관과 민간에서 무슨 음식이 생기면 반드시 먼저 이 신당에 공양하는 규례가 있사옵니다." 이 말을 들은 선생이 허허 크게 웃으며 말했다. "저승과 이승은 이미 땅으로 나뉘고 신과 인간의 위치는 이미 다른데, 신과 인간이 함께 거함이 심히 불편하도다." 하고 즉시 순검 몇 명을 불러 해당 신당을 처리하라 하자, 순검들이 크게 놀라 떨면서 말했다. "이 신당은 수백 년간 유명하게 영험한 신령이오니, 만일 인간이 사소한 죄를 범하면 신벌이 즉시 임할 것이옵니다." 순검들의 말을 들은 선생이 크게 외쳤다. "신벌은 내가 스스로 당하리라!" 하고 즉시 일꾼들과 순검들을 이끌고 가서 해당 신당을 불태웠다. 백성들이 놀라며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수군거렸다. "이번 경무관 나리는 천주교인이 아니면 예수교인이라고 소문이 파다하더라." 이처럼 선생이 부임한 이래 불과 한 달여 만에 부하들을 어루만져 복종시키고, 묵은 악습을 일소하여 깨끗이 정화했으며, 백성 보호의 실적을 더욱 높였다. 아아, 목포 백성들의 불운이었는지, 시대의 조류에 휩쓸린 탓인지, 이전에 보기 드문 훌륭한 경무관이 하루아침에 의원면본관(본인의 의사로 관직을 면함)이 되었다고 한다.

4
선생이 목포 경무관에서 면직되어 상경하니, 집안 살림은 찢어지게 가난했으나, 현명한 부인 강씨와 여덟 살 된 장남 유봉, 네 살 된 차남 하봉, 그리고 선생을 합한 네 식구 간에 화목한 분위기가 넘치는 가정에서 일체의 정치를 등지고 세속의 근심을 잊었다. 오직 어린이 교육과 동포 계발에 전념하며 반평생의 천직을 다하고자 하여, 동네의 여러 뜻있는 인사들과 상의하여 소학교를 새로 짓기로 결정하고, 초등학생들을 일제히 불러 주춧돌을 하나씩 구해오라 했다. 어린이들은 다투어 집으로 돌아가 각자의 주춧돌을 가져오고, 혹 마음에 들지 않는 돌을 가져오는 아이에게는 서로 나무라며 독려하여, 얼마 안 되어 터를 정하고 건축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얻는 무궁한 재미는 전날 풍운 속에서 살 때에는 도저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바였다. 선생이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일어나 담배를 피우며 천천히 산책하여 소학교 부지로 올라가니, 남산과 북악에 자욱하게 잠긴 안개가 만물의 비밀을 감싸 안고 있었고, 네거리 넓은 길에는 물장수(물찌게장사)가 물을 긷는 소리만 '짜걱짜걱' 들려왔다.

한 골목에 다다르니, 한 사람이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선생이 뜻밖에도 바라보니, 전날 경무국장으로 있을 때 잘 알던 별순검(특별 순검)이었다. 선생이 물었다. "허, 어떻게 여기 왔는가?" 별순검이 답했다. "아니올시다. 이 집은 누가 주관하여 새로 짓는 것이옵니까?" 선생이 답했다. "이 집은 온 동네 사람들이 합심하여 짓는 소학교다." 별순검이 말했다. "지금 경위총관께서 감찰관님(令監)을 좀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하며 체포장을 내미는 것을 받아보니 즉시 체포장이었다. 선생이 의아해하며 일단 집으로 돌아오니, 이 골목에서도 또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하며 나오는 자, 저 골목에서도 또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하며 나오는 자가 있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울려 퍼지듯 나오는 별순검이 여덟아홉 명에 달했다. 필시 새벽부터 진을 치고 선생의 거동을 감시하던 모양이었다. 선생이 집에 돌아와 옷매무새를 바로잡은 후에 아침 식사를 하고 나가니, 수많은 별순검들이 선생을 좌우와 앞뒤로 에워싸고는 재촉하듯 경무청으로 모셨다. 선생이 순검들의 호위를 받으며 경무청 문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큰 죄인을 잡았다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선생은 어떤 까닭인지 알지 못하고 안내하는 대로 감옥에 들어가니, 한 청년이 달려와 절하며 "영감께서 어찌하여 또 이곳에 들어오셨사옵니까?" 하고는 너무도 괴로워 울음을 삼켰다. 자세히 바라보니, 이 청년은 다름 아닌 사오 년 전 선생이 국장으로 있을 때 직접 수하에 부리던 사환이었다. 이 사환은 청내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선생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처럼 통탄하며 애통해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선생의 큰 죄가 암묵적으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칼을 채우고 간수를 엄하게 하여, 하룻밤 사이에 더러움을 극도로 맛보고 어둠침침한 감옥 속에서 자유를 잃은 몸이 되니, 오호라. 검은 구름이 음침하게 드리우고 앞길이 아득하도다. 선생의 운명이여! (미완)

 

잡지명  태극학보 제6호 
발행일 1907년 01월 24일  
기사제목 多情多恨(寫實小說) 
필자 白岳春史 
기사형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