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자살이란 새 풍속
한국사회풍속야사 / 임종국
1930년대에 나운규가 주연한 ‘임자 없는 나룻배’라는 영화는 시대의 조류에 밀리는 토착문화의 애환을 그린 것이었다. 그러니까 전답이며 인력거를, 또 나룻배를 잃기만 하면서 살아온 춘삼의 비극은 새로운 문화에 휘둘리면서 방황해야 했던 한국인들의 가장 현실적인 축도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춘삼이 같은 사공은 현실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던 것이. 한강 일대에 있었던 애당초 11개소의 나루가 지금은 어디 하나 명맥을 유치하고 있는 곳이 없는 실정인 것이다
그 11개소의 나루는 송파장으로 소장수들을 건네주던 송파나루가 상류로부터 첫 번째다.. 다음은 광장동과 풍납동을 연결하던 광나루이자 일명 광진나루다. 이들은 광나루 다리가 가설되면서 없어진 지도 옛날이다. 제3의 뚝섬나루는 그 옛날 할미탕에 치성을 드리기 위해서 부인네들이 사인교를 타고 건너던 곳. 최근에는 잠실서 채소바리 얼마가 지나다녔고. 제4의 무시막나루(일명 두모개 나루)도 지금은 없다.
제5의 한남동 나루가 그래도 최근까지 계속하였다 이 나루는 제3한강교로 인하여 구축당했고, 제6의 서빙고 나루도 마찬가지다. 제7은 지금 국군묘지와 군인 아파트의 선을 연결하던 동작 나루이고, 제8은 지금 인도교 자리로 한강을 건너던 노들 나루로서 삼남대로로 가는 목이라 가장 흥청거리던 그 둘이 맨 먼저 인도교로 인해서 소멸하였다. 제9는 삼개나루 제10은 서강 나루, 밤섬 주민들을 실어 나르던 조각배는 연전 밤섬의 폭파작업과 함께 사라졌고 마지막 양화나루의 상류 150미터 지점에 제2한강교가 가교되었다.
이렇게, 나릇배를 구축하면서 가설된 다리는 1900년에 완성된 한강 철교가 시초였다. 경인선 공사를 위해서. 애당초 모리스에게 허가되었던 부설권은 일본 정금은행에 저당된 후 경인철도 합자회사로 이전되었다. 이리하여 1900년 7월 5일 철교가 완성됨으로써 8월 8일부터 전구간을 운행하게 되었다.
다음은 1915년에 기공하여 1917년에 완성된 인도교다. 을축년 장마로 유실된 뒤 다시 가교된 이 다리는 아는 이가 극히 드물고, 우리가 보아 온 것은 최경럴의 손으로 설계된 세 번째 인도교다. 잠함식이라고 해서. 컵을 물에 엎으면 가운데가 진공이 된다는 원리를 이용한 공사였다. 큰 통을 컵처럼 물에 엎었는데. 수면 60척 아래까지 들어가서 사상밑 암석층에다 교각을 내려박은 것이다. 이 다리가 바로 동란 때 폭파된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들 인도교가 가설되기 전만 하더라도 열이면 여덟이 음독일 뿐 투신자살이란 없었다. 제1차 인도교가 완성된 이듬해인 1918년 봄에 용산 철도병원의 간호사가 제1착으로 뛰어들었다. 이로부터 불어나기 시작한 투신 자살자는 여자가 훨씬 많아서. 1935년에는 남자 13명에 여자가 25명이었다 그들 중 더러는 방향 감각을 잃어 백사장에 떨어진 채 허리만 다친 사람도 없지 않았다. 또 더러는 통치마로 꽃꽂이 뛰어내리다 치마가 바람을 먹은 채 물에 떠 서 한정 없이 흐르기도 했다. 어쨋든 인도교로 인하여 새로운 풍속도가 된 투신자살은 겨울이 좀 덜한 대신 4월부터 9월이 그중 많았다. 그래서 한강 인도교에는 한때 잠깐 참고 기다리라는 경고가 입간판에 기록된 적도 있었다.
한편 한강 철교에서 투신한 사람은 필자가 아는 한 청화정의 오모카미 가스죠가 처음이다. 요릿집 국취루의 기생인데, 경부철도의 중역 오오에를 거쳐서 제일은행 인천 지점의 시마우치가 애인이었다. 투신한 이유는 물론 실연이다. 그렇지만 미수로 그치면서 그 여자는 송병준의 소실이 되었다. 송병준의 출자로 요릿집 청화정을 개업했는데 이곳은 정미조약의 총본산이자 일진회 패들의 본거지다. 이리하여 한강 철교에서 투신한 제1호가 한말 친일세력의 막후인물이 되면서 여러 가지 화제를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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