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 (89. 7. 11)
1960년대 初로 기억된다. 「露店商」이 맞느냐, 「路占商」이 옳으냐는 논쟁이 벌어졌었다. 한 독자가 A신문과 B잡지에서「露店商」이라 쓰고, C신문과 잡지에서는 「路占商」이라고 表記하는데 어떤 것이 옳으냐고 편집자 앞으로 質疑葉書를 낸게 발단이 되었다.
지금은 「露店商」이 옳건 「路占商」이 맞건 모두 한글로 「노점상」이라고 쓰니까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漢字를 한 자라도 더 써야 유식한 것처럼 인식되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여간 심각한 論戰이 아니었다.
「露店商」측은 한글사전을 援用했다. 길가의 한데에 벌여 놓은 가게』이므로 「露店」이 맞다는 주장이다. 「路占商」쪽도 만만찮게 이론을 앞서 웠다. '도로를 점령한 가게』이므로 「路占」이라야 옳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존 웨인」이 주연한 「驛馬車」를 둘러싸고 헐뜯기 좋아하는 말쟁이들 사이에서 舌戰이 벌어졌다. 『原題를 직역한 영화제명이지만 그게 布帳馬車지 어째서 驛馬車냐는 것이다. 驛과 驛을 왕래하는 馬車니까, 미국 사람들이 보면 당연히 驛馬車다. 그러나 한국인이 보면 그렇지가 않다. 『馬車에 포장을 씌웠으니까 포장마차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야 風流와 時情이 흐른다는 주장이다.
▼10여년전만 해도 「노점상」이나 「포장마차」 에는 그런대로 멋 같은 게 있었다. 「노점상」은 옛날의 「5일장」이나 「3일장」을 연상시키는 庶民風의 낭만이 있었고 「포장마차에는 값싼 한잔술에 취한 정열과 사랑을 토해 내는 젊음과 품팔이들의 정취가 있었다. 그래서 鄉愁를 달래는 기분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찾는 마음에서 「노점상」을 찾았다. 울분을 풀기 위해, 젊음을 발산하는 安息處로 「포장마차」를 찾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주먹」과「脫法」,「不道德」그리고 「企業型」이란 독버섯만이 무성하고 本來의 庶民風의 體臭는 없어져 가고 있는게 현실이다. 수백만원의 「자릿稅」까지 내야한다니까, 이제 하루 벌어서 하루를 먹고살던 옛날의 노점상이나 포장마차가 아니다.
任仕彬 경기도지사가 특별지시로 「露店商단속을 촉구했다. 이것을 못하는 市長·郡守에겐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이다. 온갖 불법의 온상을 없애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자릿稅」까지 내면서 하루 하루를 먹고살던 선량한 서민들은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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