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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사람들의 생각

인천이 그립다 - 한돈희 수필가

by 형과니 2023. 3. 19.

인천이 그립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15 08:52:53

 

인천이 그립다 - 한돈희 수필가

 

정년퇴직 이후 필자는 인천전문대학 무료강좌를 몇 년째 다니며 공부하고 있다. 영어, 일어, 중국어, 동화구연 등을 배웠다. 주안도서관, 중앙도서관 등에서 하는 어학강좌에도 나가서 공부하였다. 퇴직하고도 인천은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나는 인천에 살면서 중·고등학교, 대학교 공부를 마쳤다. 6·25때 황해도 연안 온천에서 피난을 나와 자리 잡은 곳이 인천이다. 어려웠던 시절을 산 곳이 인천이니 인천시내를 다니면 곳곳의 추억이 떠오른다.

 

서울에 직장을 잡은 후로 부천으로 이사 가서 20~30년 살았다. 그러다보니 인천에는 잘 오지 않게 되었다. 퇴직한 후로 공부하러 왔다가 하인천 중국집에 가서 식사도하고 자유공원을 가서 바람도 쐬고 신포동 거리도 걸어보곤 한다.

 

인천 올 때마다 찾아보는 것이 옛날 살던 집들이다. 송현동 100번지에서 어머니가 음식점을 하였다. 그 집이 아직 있다. 술집이 많던 곳인데 밤이면 떠들썩하였는데 지금은 조용하다. 송현동 98번지 목조 2층집 여인숙을 하던 집. 그곳에 살 때 필자는 야간에는 성신고등공민학교에 나가고 낮에는 인천신문사에 기자로 다니었다. 그때 할머니가 돌아가시었다. 며칠 전 가서 보았더니 다 헐려서 길이 되었다. 그 집은 추억이 많은 집이었다.

 

송림동 성당근처의 집에 가보니 길이 나서 살던 집을 알 수가 없다. 수도국산은 공원이 되고 주변은 아파트 숲을 이루었다. 고등공민학교 자리도 찾을 수 없다. 송림국민학교도 개축했는지 다르다. 남동생이 다닐 때는 마당에 천막교실을 만들고 콩나물 교실이라고 하였다. 그 동생도 아들, 딸 낳아 시집 장가를 보냈으니 얼마만한 세월이 흘렀는가. 배다리시장, 전에는 사람이 많고 활기가 있었는데 조용하기만 하니 경기가 어떻게 된 것인가.

 

동방극장이 있던 거리도 한산하기만 하다. 인천신문사 기자하던 시절, 진흥각에서 자장면을 많이 주문하여 먹었다. 어느 날 그 중국집에 들어가 보았더니 주인의 아들, 딸들이 하는지 젊은 사람들이다.

 

대학을 나와서는 동인천 근처의 '미담다방'에서 산여울문학동인들이 만났었다. 동인집도 만들고 예식장을 빌려 시 낭송도 하였다. 지방신문에 발표도 하였었다. 동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젊은 시절 기자생활은 매력적인 것 이었다. 지면에 글이 발표되는 것이 기쁘고, 회식 모임도 갖고. 나는 체육회 등 기관의 좌담기사를 여러 번 썼다. 그 기자들도 은퇴해서 살 것이다.

 

구시가지는 조용하다고 해도 송도 신도시는 해처럼 떠오르는 도시이다. 대학들이 들어서고 아파트 당첨 경쟁이 대단하다고 한다. 어떻게 변두리 지역들이 발전할까.

 

어제는 주안 사거리 근처의 집을 가 보았다. 그 집 그대로이다. 그곳도 고층 건물들이 있지만 경기는 그 타령 같다. 인천은 땅이 넓어졌는가. 강화, 섬도 인천이니 말이다. 강화는 가기가 편리하고 농산물이 많은 곳이다. 교동면, 삼산면, 떨어진 섬들은 공기 좋고 휴식하기 좋은 곳이다.

 

어느 날 전철에서 고등학교동창을 만났다. 군 장교 출신으로 연금으로 산다고 한다. 신포동 어느 법무실 사무실에 동창들이 모여 바둑, 장기를 두곤 한다고 한다. "이젠 동창들도 나이가 70전후라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어" 한다. 어린시절을 살아온 인천은 내 고향이고 그리운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