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플랫폼이 아니라 놀이터가 필요하다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7-02-15 09:29:32
인천은 플랫폼이 아니라 놀이터가 필요하다
장한섬-배꼽주인 대표
인천문화재단이 문화비평지 ‘플랫폼’을 창간했다.
“플랫폼은 인천, 한국, 아시아 문화가 격의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열린 장소이자 자유로운 주장들이 들고 나는 쌍방향 발언대를 뜻합니다”라고 판권지에 그 성격을 밝혔다.
또한, 최원식 대표이사는 “낡은 신은 물러갔으되 새로운 신은 도래하지 않은 이 회색의 중간지대에서 우리는 플랫폼을 세운다. 사람들과 사람이 생산이 물건이 쌍방향으로 이동하는 플랫폼은 자유로운 탈중심의 세상을 홀연 열어젖힌다. 그런데 플랫폼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중심을 내세우지 않는 중심 또는 분산하는 중심들 사이를 잇는 탈중심의 수평축인 것이다”라고 서문에 적었다.
위에 적시된 열린 장소, 자유로운 주장, 쌍방향, 이동, 탈중심은 플랫폼이 아니라 인터넷을 떠올린다. 말 많은 인터넷 악성 댓글은 차치하고, 플랫폼이라는 상징이 인천문화와 어떤 관계인지 생각하게 한다.
플랫폼의 다른 명칭은 승강장인데, 플랫폼에서 수평 이동하는 것은 기차이고 사람과 물건은 오르고 내릴 뿐이다. 플랫폼은 상행선과 하행선으로 분리 교차하는 선의 정지지점(點)이지 면(面)의 이동공간은 아니다.
기차가 도착하고 출발하기 무섭게 사람들은 플랫폼에서 사라진다. 버스정류장과 달리 손을 흔들어도 결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오직 기능만이 작동한다. 효율성이 정체성이다. 플랫폼을 움직이는 것은 시간표다.
출범한 지도 어언 2년여, 이룬 것보다 이룰 것이 창창하고 책임감이 무거운 인천문화재단이 내는 ‘플랫폼’을 읽다보면, 산업화의 ‘생산÷시간=효율’이라는 등식이 떠오른다.
‘인천, 한국, 아시아 문화’라는 개념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인천시민’은 보이지 않는다. 인천에서 살아온 사람들, 인천으로 이사 온 외지인, 인천의 외국인이주노동자는 찾을 수 없고, 창밖의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에 대한 설명으로 시선을 기차 안에 잡아둔다.
플랫폼은 확장일로의 제국주의와 근대화가 낳은 시설물이다. 탈중심이 아니라 역세권이라는 자본의 자장이 형성되는 기점이고, 사고와 무임승차를 막기 위해 감시와 통제가 작동한다. 결정적으로 매표 없이 들어갈 수 없는 제한된 유료공간으로 중앙(서울)에 종속적이다.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우리 플랫폼에서 무임승차는 사절이다. 자신의 의지로 가난한 표를 구매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그 정성스런 집합 속에 이루어지는 희망의 상호교육이 기차를 움직이는 거대한 동력이다.”
지하철공사는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무료승차권을 발급한다. 민간기업도 공공성을 강화하려 노력한다. 인천문화재단은 검열기능이 아니라 지원정책을 펴야 하는 곳인데, 실(室)수만 늘리고 터는 넓히지 못하는 듯하다.
문화예술인은 가난하다. 경제가 어려우면 시민들은 문화로부터 멀어진다.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다면 문화정책과 문화재단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인천문화재단은 ‘기차를 움직이는 거대한 동력’의 효율성이 아니라 왜 움직여야 하고, 누구나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움직일지를 고민해야 할 공공기관이다.
비평지(紙)는 시민참여보다 대중문화를 담는다. 서문에도 나오듯 인천은 인재에 목마르다. 그렇다면 인재가 원하는 것을 주라. 창조적 인재는 시간표에 갇힌 플랫폼이 아니라 매표소 없는 놀이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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